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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May 03. 2021

물의 가장자리를 걷다

로런 그로프의 <플로리다>와 봄의 바다




  솜씨를 부린 글보다 단순하고 정확한 글을 쓰고 싶다. 분수보다 빗방울 같은 . 내면 억지로 퍼올리지 않고 빗물 받듯 떨어뜨리고 싶다. 무심하게, 하지만 사유와 문장을 편협하고 거칠게만 끌고 가면  되겠지. 어느 부분에서 힘을 뺀다면, 다른 부분에선 차곡차곡 공들여 쌓아 올려야만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차를 타고 바다를 보고 왔다. 물이 많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다. 물이 많은 곳은 대부분 탁 트여 있고, 햇빛을 보기 좋다. 주위는 고요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없이 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봄바다는 어딘지 쇠락한 느낌이다. 카페 옆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도 색이 바래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해변용 장난감처럼. 차를 시키고 널찍한 카페 옥상에 올라가 로런 그로프의 <플로리다>를 읽었다. 첫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직 두 편밖에 안 읽었지만...) 힘이 있다. 연민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정확하게 본다.        



  지난봄 백조들이 새끼 넷을 낳았는데, 솜털로 뒤덮여 삑삑 울어대는 그 사랑스러운 것들은 어린 아들들의 기쁨이었다. 아들들은 매일 그것들에게 먹이를 던져주었는데, 어느 아침 백조들이 우리가 던져준 먹이에 정신이 팔렸을 때 새끼 하나가 캑 목멘 소리를 내고 몇 차례 자맥질을 하더니 수면 아래로 쑥 내려갔다. 새끼는 다시 나타났지만, 연못 반대쪽에서, 수달의 발에 붙잡힌 채였다.
  수달은 등을 물 쪽으로 하고 조용히 떠서 그것을 조금씩 씹어먹었다. 수달이 새끼 백조 한 마리를 더 먹고 난 다음에야 야생동물 보호팀이 도착해 남은 두 마리를 건져냈지만, 나중에 지역 소식지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새끼들의 작은 심장이 겁을 먹어 멎어버렸다고 했다. 부모 백조들은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몇 달을 떠다녔다. 아마도 이것은 투사일 것이다. 검은 백조이자 부모인 그것들은, 깃털이 이미 상중의 색깔이다.

                                                                                                                                                (유령과 공허, 19쪽)



  수달은 등을 물 쪽으로 하고 조용히 떠서 그것을 조금씩 씹어먹었다. 이 문장 미쳤고, 아마도 이것은 투사일 것이다. 이 문장이 마음에 오래 걸려 있었다. 25쪽에서 다시 백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녀원의 늙은 수녀들이 떠나고 새로 온 교수가 수녀원 건물 앞 오크나무에 업라이트 조명을 달아놓았는데 그 나무는 아주 거대해서 ‘아래를 향해 자라다가 땅을 짚고 다시 위로 자랐다. 그 모양새가 팔꿈치를 땅에 댄 팔 같’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소설 속 나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 넋을 놓고 서서, 밤중에 백조들이 저들의 섬에서 반짝거리는 그 빛을 바라보는 것을, 저들의 가슴이 감동하는 것을 상상한다. 백조들이 다시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경험하고서 어떻게 그 상실을 견디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적혀 있다.


   바다 반대편에는 야산이 있어서 책을 읽다 물과 숲을 번갈아 보았다. 군데군데 이팝나무가 보였다. 나는 이번 계절에 이팝나무를 처음 알았다. 매년 늦봄과 초여름에 보이던 흰 꽃나무가 뭔지 궁금해하기만 했다. 지난겨울에 제주도에서 붉은 열매가 가득 피던 가로수도 여행 내내 볼 때마다 저것 좀 봐, 하면서 너무 예뻐하기만 했다. 느끼는 건 쉽게 한다. 그 이후로 나아가는 건 힘이 드니까. 감각하는 것 이상의 상위의 것들을 능숙하게 하고 싶다. 이름을 알면 길이 들고 친숙해질까. 내면과 마음에 골똘하는 것만큼 세계와 실감에 대해서도 잦게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본 나무 이름은 먼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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