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운의 변동 - (2) 문명과 문맹
아침마다 긴 여행을 떠난다. 인천에서 서울로. 그렇다. 내가 국어강사로 일하는 학원은 서울에 있다. 어쩌다보니 그리되었다. 종합학원인지, 단과학원인지도 밝히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되었다. 무엇이 되었다? 서울 어느 학원의 국어강사 되었다. ‘나는 국어강사가 되었다’라는 문장에서 ‘국어강사가’는 ‘되었다’라는 서술어의 앞에 위치하여 그 뜻을 보충해준다. 이를 ‘보어’라고 한다. 보어는 문장의 주성분일까, 아닐까? 재미있게도 주성분이다. 문장의 주성분에는 주어, 목적어, 보어, 서술어가 있다. 그것을 쉽게 외우려면 ‘주목보서’라고 줄여 외우면 된다. 알겠지 얘들아? 그렇다. 나는 이런 것들을 가르친다.
내가 맡은 학교는 두 개였는데, 그중 한 학교는 시험문제를 꼬아서 낸다. 학원 강사들 헷갈리게 하려고(실제로 그런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시를 배우는 단원에서 교과서 외 작품을 막 가져온다. 작년에는 다섯 개씩 가져왔다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세 개밖에 없단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세 가지 작품 중에는 도종환의 시 ‘담쟁이’도 있다.
담쟁이. 당신은 담쟁이를 아시는가? 아니, 당연히 아시겠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니고, 당신은 ‘담쟁이’라는 시를 들어보셨는가? 음,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지만, 혹시나 선뜻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시 ‘담쟁이’를 아래에 첨부하겠다. 다음은 도종환의 시 ‘담쟁이’입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시죠.
<담쟁이>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을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나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강의실에서 이 시를 PPT로 띄워놓고, 태블릿 패드의 전자펜으로 밑줄을 치며 가르친다. 자, 얘들아 여기 봐봐. 여기서 뭐랑 뭐가 대조되고 있지? (학생: ‘담쟁이’랑 ‘우리’요!) 그렇지. ‘담쟁이’랑 ‘벽’이 대조되고 있니? 아니야. 벽은 그냥 그 자체로 있을 뿐이야. 대조되고 있는 건 ‘담쟁이’랑 ‘우리’란 말이야. 여기서 담쟁이란 ‘벽’으로 상징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내는 존재를 뜻해. 그럼, 이 시는 ‘담쟁이’를 의인화하고 있다 아니다? 그렇지. 의인화하고 있단 말이야. 4연에 ‘담쟁이 잎 하나’는 뭐라고 했었지? (학생: ‘선구자’요) 그렇지. ‘선구자적 태도’를 지닌 사람을 뜻해. 선구자란 무엇이냐? 앞서나간 사람이라는 뜻이야. 자 그럼 ‘우리’랑 대조되고 있는 담쟁이의 특징에 대해 살펴볼까? 1연에 4행 밑줄 치고, 이렇게 적어보자. ‘담쟁이의 특징 ①’, 그리고 2연에 3행 밑줄 치고 담쟁이의 특징 ②…….
여기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 서울, 서울 중에서도 교육열이 나름 치열하다는 목동. 이곳의 중학생들은 적으면 3개, 많으면 5개의 학원을 다닌다. 강의는 실시간으로 촬영되어 당일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링크로 배부된다. 학생들은 학교 숙제, 시험, 수행평가로도 모자라 국어학원, 수학학원, 영어학원의 수업을 세 시간씩 들으며 각각의 학원에서 내준 과제를 수행한다. 또한 ‘클리닉’이라고 불리는 보강에 참석하여 모의고사 50문항을 풀고 오답노트를 실시한다. 과제 실시 및 모의고사 결과는 클리닉이 끝나는 즉시 문자를 통해 학무모님들에게 전송된다. [홍길동] 학생은 이번 클리닉 모의고사 50문항 중 45문항을 맞추어 어쩌고 저쩌고…….
자, 이것이 문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문명이다.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산업화를 보란 듯이 이루어낸 나라다. ‘빨리빨리, 더 크게, 더 높게, 더 세련되게, 더 멋지게’를 외치며 지금까지 급속도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빨리 달려온 탓에,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길바닥에 흘렸다.
급속도로 발전한 모든 존재는 부작용을 낳는다. 나는 그 부작용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은 담쟁이가 무엇인지 모른다.
열다섯, 혹은 열여섯 먹은 이 동네의 아이들은 미적분을 어떻게 하며, ‘판옵티콘’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고, ‘construction industry’가 건설업을 뜻하는 영단어임을 알고 있지만, 담쟁이가 무엇인지 모른다. 도종환의 시 ‘담쟁이’에 나타난 ‘담쟁이의 특징’에 대해선 1번부터 4번까지 줄줄이 읊을 수 있지만, 정작 담쟁이가 어떻게 생긴 식물인지 모른다. 담쟁이가 어떤 식으로 엮여 벽을 타고 오르는지 한 번도 관찰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왜 시의 화자가 담쟁이는‘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라고 표현했는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담쟁이가 식물이 아니라 벌레인 줄 아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여러분, 담쟁이는 벌레가 아닙니다. 담쟁이는 식물이에요. 식물.”
나는 수업시간에 컬러 프린트로 담쟁이 사진을 인쇄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담쟁이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바로 이게 담쟁이란 말이야 얘들아. 담쟁이는 무슨 색이야? 초록색이지? 그러니까 ‘푸르게 절망을 뒤덮는다’라고 표현한 거야. 담쟁이 벌레 아닙니다. 소금쟁이랑 다른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이 문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문명이다. 아니, 사실 이것은 문명이 아니다. 이것은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가 아니다. 이것은 발전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퇴보다.
반칠환 시인의 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의 1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이 시 또한 이번 기말고사 시험 범위에 속한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한 출판사의 중학 교과서에 따르자면 이 시에서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존재 ①’을 뜻한다. (그러한 존재 ②, ③, ④에는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있다) 시의 화자는 그런 식으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을 쭉 나열한 뒤 맨 마지막 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왜 하필이면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화자를 멈추게 했을까?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갑자기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가르칠 때는 별생각 없이 가르쳤는데, 왜 하필이면 그날 그때, 그런 의문이 생겼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불현듯이 그 질문은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사실 씀바귀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나도 담쟁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담쟁이의 세계에서 문맹이며, 나는 씀바귀꽃의 세계에서 문맹이다. 나도 마찬가지구나. 나도 문명 속의 문맹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씀바귀꽃을 검색해보았다. 노랗기도 하고, 종종 보랏빛이 스며든 종도 보인다. 씀바귀꽃은 아주 작고 볼품없게 생겼다. 잎이 너무나도 얇아서 건드리면 바스러질 것 같아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작고 볼품없는 씀바귀꽃은 사실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씀바귀꽃이, 어느 봄날 보도블록 틈에 피어났으니 당연히 멈출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저렇게 여리고 초라한 꽃이 강하고 단단한 시멘트 사이를 뚫고 피어났다. 그러니 어찌 멈추지 않겠는가. 어찌 기특하지 않겠는가.
처음 글을 쓸 때는 문명 속의 문맹에 나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아보니,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 있어 문맹이다. 급속도로 발전한 문명이 낳은 부작용 중 일부를 나누어 가지고 살아간다. 아, 대한민국이여. 아, 문명이여. 나는 지금 캔에 담긴 제로칼로리 사이다를 마시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무선 키보드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문명이다. 하지만 이것은 발전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 어느 정도 문맹이지만, ‘가만히 앉아 문명이 낳은 문맹이 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며칠 뒤엔 단체문자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한 통 써봐야지. 「얘들아, 우리 배운 시 있잖아. 왜 씀바귀꽃이 화자를 멈추게 했는지 아니? 씀바귀꽃은 이렇게 생겼어. 저렇게 약해 보이는 것이 다른 곳도 아닌 보도블록 틈에서 강인하게 피어났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니. 혹시나 길을 가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핀 꽃을 발견하게 된다면, 영어학원에서 수학학원으로 가는 길에 그런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5초라도 좋으니 잠깐만 멈춰보자.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