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운의 변동 (3) - 정서와 장사
용케도 잘 버텨내고 있다. 계속되는 야근과 초과근무, 휴일 출근 사이에서 또 근근이 한 달을 버텼다. 월급이 들어왔다. 달달한 월급. 나는 또 한 달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학생들의 시험 기간이 끝나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이것을 업계 용어로 표현하자면 ‘내신(수업)이 끝나고 정규가 시작되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정규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중학교 3학년 담당에서 1학년 담당으로 전환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맡았던 S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반에 배치되었다. 고등관에서 강사 두 명이 내려와 중학교 3학년 팀에 가담하였다. 이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중3으로 분류되지 않고 ‘예비 고1’로 분류된다. 이들은 평가원과 수능, 사설 모의고사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푼다. 나는 이제 그들의 담당 강사가 아니다. 하지만 ‘내신 상담’이라는 것은 또 해야 해서 나는 내가 맡았던 학생들의 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국어학원입니다. 이번에 △△이 기말고사 성적 혹시 들으셨을까요?...”
‘내신 상담의 목적은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학생의 시험점수를 파악하여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함께 강구하기 위함이다.’라고 나는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1학년 담당으로 급하게 변경되었기 때문에 이 학생의 ‘향후 학습 전략’을 더 이상 함께 의논할 수 없다. 나의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직 구성원의 업무수행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에는 근태도 포함될 수 있으며, 업무성과도 포함될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출근하여 주어진 업무를 근무시간 내에 수행하고자 노력하였다. 만약 주어진 업무를 근무시간 내에 모두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집에 가지 않고 남아서 해결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였다.
근태 좋고 업무성과도 나쁘지 않으면 된 거 아니냐. 그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학원업 종사자에게는 하나의 판단 기준이 추가된다. 그것은 ‘정규전환율’이다. 내신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을 정규수업으로 데려오느냐. 그러니까 ‘시험기간이 끝난 뒤에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원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다니느냐’가 학원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교육은 공교육과 달리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은 기업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한다.
나는 정규전환율이 높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신 상담을 하면서 정규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꺼내 보아도 돌아오는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애가 이번에는 쉬고 싶다고 해서요.’ 혹은 ‘저희 애는 내신만 듣고 싶어 해서요.’라고 대답하는 학부모님들이 꽤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학부모님 앞에서 ‘어머니, 안됩니다. △△이는 정규를 들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올라가면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중등 과정에서는 문법을 7개 정도밖에 다루지 않지만 고등학교 올라가면 다루는 문법이 13개로 늘어납니다. 아이 혼자서는 이것을 모두 담당하지 못합니다. 학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면 쉼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온종일 국어학원, 수학학원, 영어학원, 과학학원을 오가며 지칠 대로 지친 아이의 뒷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나는 “그렇군요 어머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이따금 슬퍼졌다. 너네들은 왜 물건이 아니고 사람이냐. 너네는 왜 사람이라서 나를 괴롭히냐. 너네는 왜 쓸데없이 웃어서 마음대로 괴롭히지 못하게 만드냐. 너네는 왜 뒷모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냐.
사랑. 사랑이라는 정서. 아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때때로 괴롭게 만든다. 정서가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괴롭다. 정서가 많은 사람, 우리는 그를 ‘다정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시를 잘 짓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요즘으로 치자면 시인이었다. 그는 잠 못 드는 밤 이따금 시 한 수를 지어 부르며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가 지었던 시조 중 가장 유명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이화에 월백하고’이다. ‘다정가(多情歌)’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위 시를 현대어로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돌아서 자정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서린 봄날의 정서를 소쩍새가 알고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한 나는 그것이 병인 양, 잠을 이루지 못하여 하노라.
나는 장사하는 조직의 구성원인데, 나는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교육자인데. 아니 그것보다 나는 정서라는 것을 가진 사람인데. 읊조리다가, 잊다가, 떠오르는 얼굴.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혼자 울다가, 밉다가, 분개하다가……. 하루가 또 지나간다.
‘서정’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정서가 듬뿍, 함유된 마음을 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