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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안 Feb 01. 2024

4DX로 보아야 즐겁다. 4DX로 보아야만 즐겁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2019년 봄,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게 되었다.

거대 괴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건물을 부수는 게 트레일러의 전부였던 그 영화는 바로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였다. 지금이라고 해서 고질라에 딱히 대단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더욱 고질라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저 고질라라는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물 간 연예인 느낌이라서 호기심이 마구 샘솟았다. 2019년에 고질라? 너무 한 물 간 IP를 내놓은 거 아닌가?


 이후, 그저 직접 영화관에서 보면 그 상황 자체가 웃길 것 같다는 이유로 친구한테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계속 졸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에게나 고질라에게나 참 못된 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치만 도저히 여자친구에게 보러 가자고 할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친구밖에 조를 사람이 없었다. 마침 또 그즈음에 어딘가에서 용산 CGV의 4DX관이 리뉴얼됐다는 소식을 본 터라 기왕 보는 김에 4DX로 보자고 졸랐다. 생각보다는 빡빡했던 친구의 자존심과 예매 경쟁을 뚫고 용산 4DX관에 예매를 성공했고, 마침내 예매 당일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거대한 나방 유충 비슷한 것이 나왔다. 나방 유충과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자 의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의자 위에서 나름 흥미롭게 영화를 즐기고 있었는데, 나방 유충이 점액을 뿜자 앞 좌석 시트 뒤편에서 얼굴 쪽으로 물이 분사됐다. 뭔가 진짜 점액이 튄 느낌이라서 생동감 있게 불쾌한 경험이었다...


 이후에는 그냥 말 그대로 괴수 대잔치였다. 주인공인 고질라와 메인 빌런인 킹 기도라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화산 익룡, 거대 유충이 변태한 거대 나방 등등이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며 인류의 문명과 도시를 박살 내는 것이 영화의 전부였다. 그때마다 강력한 4DX 효과도 함께 작동했고 친구와 나는 절로 터져 나오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스크린 속에서는 무언가가 막 부서지고 터지고, 그에 맞춰서 의자도 흔들리고 양옆에서 강풍이 막 쏘아지고 그러니까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영화를 보고 있다기보다는 2시간짜리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던 것 같다.


 특히 수많은 씬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바로 앞서 말한 화산 익룡의 탄생 장면이었다. 한 섬에 있는 활화산에서 거대한 프테라노돈이 튀어나오고, 그게 섬 위를 쓸고 지나가면 지나간 자리에 한 박자 늦게 불이 확 붙으면서 섬 전체가 잿더미가 되는 장면이었다. 이때, 저 화염이 도시를 휩쓸어버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목 뒤에서 열풍이 쫘아아아악 나왔는데 이때 느껴진 현장감은 정말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에도 고질라가 입에서 레이저를 뿜거나 고질라의 몸에서 핵폭발이 일어날 때도 목 뒤로 열풍이 쏟아져 나왔지만 저 화염익룡이 줬던 공감각적인 압도감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 자체만 보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잘 만든 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나는 항상 영화에서 스토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영화의 스토리는 참으로 별로였다. 괴수들은 말을 못 하니 등장하는 인간들이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하는데 인간들의 서사가 너무 엉망진창이라서 스토리 전체가 같이 엉망진창이되어버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둘이서 이야기 할 때도 두 사람 모두 영화의 내용이 재미있었다는 언급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와 4DX 효과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즐거웠고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서 고질라 이후로도 4DX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영화들이 개봉하면 그 영화들을 4DX로 보러 가곤 한다. 그중에는 이 영화의 후속작인 고질라 vs 콩도 포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재미있는 영화 없냐며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항상 이때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다만 내가 원래 전달하려면 주제는 '비록 재미없는 영화더라도 4DX와 잘 맞는 영화라면 4DX로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어요!' 인데, 내 말을 듣고 4DX를 체험해 봤다는 사람은 없고 그냥 나를 고질라 팬보이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고질라가 재미있어요!' 혹은 '저는 고질라를 좋아해요!' 정도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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