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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안 Feb 08. 2024

익숙하지만 사실 최근에 먹어볼 일 없던 맛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2007년 아이언맨부터 시작해서 2019년 어벤저스 엔드게임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궈 주었다. 그러나 엔드게임 이후 거짓말처럼 점점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마블에서 새로운 소식을 발표하거나 신작을 개봉하더라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의 위상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까지 몰락 해버린 것이다. 우당탕탕 히어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망하지 않고 계속 뭐라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기에, 어느 정도 인기를 회복하는 날이 오기를 빌며 마블 영화를 하나 얘기해보고자 한다. 바로 인기의 내리막 초입에 있었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다.


샹치 역을 맡았던 배우 시무 리우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을 보러 가게 된 경위도 고질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를 4DX로 본 이후 몇 년간 4DX의 강렬한 맛을 잊지 못하고 있던 나는, 최신 개봉 예정작들을 살펴보다가 4DX로 봤을 때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가 보이면 주변 친구들을 설득해서 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었다.(이 패턴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원피스 극장판: 스탬피드]라던가, [고질라 vs 콩]과 같은 영화들이 주로 선택되었는데, 선택 기준은 사실 간단했다. "액션 영화이되, 반드시 주먹다짐을 기반으로 한 난투 액션씬이 있을 것" 이 그 기준이었다. 난투 장면에서 의자가 마구 흔들릴 때 절로 터져 나오던 웃음을 잊을 수 없기 땨문이었다.


 샹치는 그 기준에 상당히 부합하는 영화였다. 트레일러부터 주인공이 버스 안에서 들고뛰고 때리고 차고 난리도 아니었다. 당최 무슨 설정인건지도 모르겠는 10개의 황금색 고리와 이를 이용하는 다채로운 액션의 예고편은 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트레일러를 본 그 즉시, 고질라 관람 시 동원되었던 친구에게 다시 한번 4DX를 보러 가자고 영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설득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여의도 CGV에서 샹치를 보고 그 앞에 있는 판다익스프레스를 먹으면
"미국식 중국영화 + 미국식 중국요리 = 미국식 중국 콤보"

라는 해괴한 궤변에 친구는 끝내 넘어왔고, 영화가 끝나면 판다익스프레스에서 오렌지치킨을 먹자는 조건으로 친구와 함께 샹치 4DX를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샹치를 4DX로 보러 간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딱 생각한 대로 난투신을 비롯한 각종 액션 장면들에서 흔들림 효과가 작렬했고, 그때마다 너무 신나고 재밌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씬이 끊임없이 휘몰아쳐서 심심할 틈이 거의 없는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 보고나니 '샹치는 굳이 4DX가 아니라 영화 자체로만 봐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영화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무술을 기반으로 한 액션신을 굉장히 잘 살렸다. 돌이켜보면, 최근 십여 년 동안 그런 무협스러운 움직임의 액션 영화를 본 기억이 없었다. 아무래도 히어로물을 필두로 한 블록버스터의 시대였다 보니 나올 일이 없기도 했고, 액션이 나오더라도 존 윅처럼 총기를 주로 사용하는 절제된 액션의 영화들이 최근에는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던 성룡의 취권, 주성치의 쿵푸허슬과 같은 동양 무술 특유의 과장된 모션은 이제 머릿속에서 잊혀가는 차였다. 그러나 샹치에서는 앞서 말한 동양 무술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조합해서 아주 멋스럽게 표현해 냈다. 특히 텐링을 이용한 주인공과 악역의 전투 장면, 홍콩의 보라색 네온사인을 등지고 싸우는 주인공과 악역의 전투 장면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양조위 배우가 샹치의 아버지 배역으로 나오는데 그 존재감이 엄청났다. 분명 악역으로 나옴에도 영화 내내 너무 멋있게 나오고, 나오는 장면마다 시선을 다 끌고 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뭔가 주인공의 서사보다 악역의 서사에 더 몰입하게 되기도 하고, 오히려 역효과가 가서 악역의 무자비한 살육 장면이 악행이 아니라 한 가장의 정당하고 호쾌한 복수 장면으로 보일 정도였다. 확실히 영화의 황제라는 그의 이명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결론을 말하면, 샹치는 꽤 재밌는 영화였다. 비록 국내에서는 반중 정서로 인해 다소 저평가받은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오히려 이후에 나온 다른 MCU 영화들(와칸다 포에버)이나 앞서 나온 마블 히어로들의 데뷔작(토르, 캡틴 아메리카)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나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괴수 대전투로 바뀐다고 뭐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괴수를 마지막에 주인공이 찢어발겼으니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샹치 4DX를 본 날 정말 별로였던 건 오히려 영화가 아니라 영화 이후에 먹은 오렌지 치킨이었다.

이전 01화 4DX로 보아야 즐겁다. 4DX로 보아야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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