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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Oct 07. 2022

운명을 바꾸는 법


잠들기 전 단편집을 읽곤 한다. 장편은 저녁, 단편은 잠들기 전에 읽기 좋다. 단편은 딱 40분 정도에 완결되는 이야기라 적당히 내 고민을 잊고 다른 세계에 빠지기 좋다.


지난해 나온 윤성희 작가 단편집 <<날마다 만우절>>의 표제작 <날마다 만우절>에는 유쾌한 거짓말이 축제처럼 난무했다.  소설 속 가족들이 '거짓말'이라고 전제하고 하는 말들은 알고 보면 그동안 감추었던 진실, 더 큰 진실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을 덮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의 전신거울 앞에 서서 오른쪽 어깨 아래 딱딱하게 굳은 승모근을 주물렀다. 그러고 싶었다. 몸에서 딱딱한 곳을 부드럽게 만들고 싶었다. 문을 걸었다.

'부들부들해져라, 기름칠한 것처럼.'

혀는 미꾸라지처럼 미끌미끌해지길. 미끌미끌한 몸과 혀로 준비를 하려 한다. 누군가를 위한 거짓말을 할 준비를.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


스무 살부터 사귀었던 남자친구 A는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대학 졸업이 가까웠을 때에도 성과가 없자 고민이 많아졌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특출나게 잘난 존재였다. 집안의 기대가 컸지만 그 기대보다 스스로 성공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에 괴로웠다.


A와 타로점을 보러 갔다. 내 기억에 이성적이었던 그가 먼저 가자고 말 걸 보면 그는 아마 꽤 초조했던 것 같다. 타로이스트는 A에게 펼쳐진 카드 중 세 장을 꺼내고, 한 장씩 꺼낼 때마다 마음속으로 궁금한 걸 생각하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첫 번째로 꺼낸 카드는 검은 사람이 서 있는 카드였다.


타로이스트는 이 카드는 'fail'을 의미한다 말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법고시."


타로이스트는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타로이스트에게 그 말이 전부냐고 묻고 싶었다. '아니, 희망도 이야기해야죠, 그게 뭐예요?' 그맘때 A가 너무 이 없어 보여서 다 잘 될 거야!, 하고 위로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의미도 없고 거도 없는 말이라 더 이상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타로점 결과가 혹시 위로가 될까 기대했었다. 난처했다, 오히려 절망만이 커졌다.


그날 우리는 그곳을 나와 별말도 없이 터벅터벅 걷다 헤어졌다. 그 얼마 뒤 그는 시험에서 떨어졌고, 그는 버틸 수 없었기에 취업을 했다. 시험이야 포기한다고 해도 취업 후 뜻대로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나와 사귀는 동안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와 헤어질 때 나는 그동안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만나는 순간에만 행복했어."


그와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한데 그를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가끔 검색어를 넣어본다. 이젠 성공했는지, 잘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그는 SNS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우린 접점이 될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근황을 전혀 모른다. 그저 간절히 빈다, 이젠 행복하기를.


타로이스트는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그날을 생각하면 아프다. 나비 날갯짓 하나로도 큰 폭풍이 생긴다는데 다채로운 인간사가 성또는 실패에 고정될 리 없다. 마찬가지로 타로 카드 해석도 다양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한 카드의 의미가 실패일 수도, 재생일 수도 있다고. 그날 타로이스트의 잘못은 다른 가능성을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설사 내담자가 결국 실패하는 길이 보이더라도 그곳까지 가는 길을 위해 적당한 거짓말을 해주었다면.


올 초 유튜브 '너덜트'에서 <신년운세>라는 영상을 봤다. 너덜트는 시트콤처럼 재밌는 상황을 담은 영상으로 인기를 끈 채널이다. <신년운세>는 이런 상황이다. 친구 부탁으로 잠시 타로 가게를 지키러 갔다가 손님을 맞는 주인공. 손님에게 나중에 오라고 말하며 돌려보내려 한다. 하지만 손님이 안 좋은 생각을 한다는 말에 결국 자신 모르는 타로점을 봐주게 되는데.


이 영상의 묘미는 타로 결과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데 있다. 타로점을 보러 온 손님이 낙담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점괘를 좋게 바꿔준다. 가령 탑에서 떨어지는 카드가 나오면 카드를 거꾸로 돌려서 위로 솟구치는 운세라고 말해준다.



나는 이 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위로를 받으려고. 내 운명을 이렇게 좋게 바꿔주고, 좋게 해석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리고 아쉬워했다. 수년 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타로이스트가 저렇게 말해주었다면 남 잠깐이라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설사 결과는 그대로일지라도 미리 패배감에 빠지진 않았을 텐데. 아니 그때 내가 사주카페를 나오자마자 저 사람 사기꾼인 것 같아, 하고 말해주었다면 A는 그냥 피식 웃고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재밌는 영상을 보다가도 이 생각이 떠올라 한 번씩 깊은 한숨을 쉰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타로이스트처럼 살아왔다. 지금껏 꼬장꼬장하게 진실과 조언, 충고를 전해준답시고 상대를 찔렀다. 거울을 보며 근육을 풀고 혀를 풀고 긴장을 푼다. 누군가의 불행과 실수를 만나면 그를 위해 축제 같은 거짓말을 해야지. 또 다른 진실을 전해주는 타로이스트가 되어야지.


'지금 탑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아니야. 카드를 옆으로 돌려봐! 탑과 평행하게 날고 있지? 넌 계속 날고 있었어. 단지 날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네가 날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뿐.'


당신의 20대를 기억한다. 당신은 잘 살아 왔고, 잘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숙면을 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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