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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Oct 10. 2022

김밥과 발버둥

집 근처에 김밥집이 생겼다. 수많은 지역 중에서 우리 동네 창업을 결심하시다니, 김밥집 사장님 마음속 깊이 감사를 전한다. 내 인생에 낙 중에 하나가 김밥이다.


사람들은 김밥을 쉽게 생각하지만 김밥은 간단한 음식도, 하찮은 음식도 아니다. 요즘에 잡채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인지 그 가치가 재조명되곤 하더라. 잡채 못지않게 김밥도 그렇다. 분식집에 있는 음식이라고 하찮게 봐선 안 된다. 내가 요리를 하던 시절 다른 요리는 모두 그럭저럭 했지만 김밥만은 늘 실패했다. 알다시피 재료 손질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너 개 재료만 하면 맛이 없고, 여러 개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두 개는 실패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시금치 간이 안 맞거나, 당근을 태워버렸다면 정말 화가 날 일이다. 이 모든 걸 성공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김밥을 마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그러웠던 당시 남자친구도 내가 싼 옆구리 터진 김밥만은 외면했다.


원래부터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김밥인데 보통 김밥집엔 최근 10년 시련이 왔다. 교리김밥, 보슬보슬, 마녀김밥 등 기존과 다른 맛을 선보인 김밥집이 인기를 끌면서 불고기김밥, 치즈김밥, 야채김밥 등으로 살아남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김밥집으로 성공을 하려면 트렌드를 살펴야 하고, 가끔 식중독 문제도 터지니 재료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렇게 어렵고 귀한 김밥을 다루는 전문가가 동네에 오셨다.  


구경할 겸 직접 가서 주문을 하기로 했다. 입구 간판을 보고 피식 웃었다.

'김밥 커피.'

김밥과 커피는 언뜻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에 이미 그런 곳이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청 유명한 김밥집이다. 편의상 그곳을 '최고김밥집'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최고김밥집'은 네이버방문자리뷰 수천 개에 달한다. 좀처럼 리뷰를 남기지 않는 나도 서너 번 남겼다. 김밥을 맛있게 말아주시는 고마운 사장님께 보답하고자.


'최고김밥집'은 독특하게도 커피도 취급한다. 한국인들은 어차피 밥 먹고 난 후 후식을 찾는다. 김밥 한 줄은 양도 모자라고, 배달 주문 최저금액을 못 맞춘다. 그러니 밥 먹고 주문할 커피 주문을 기왕이면 여기서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장님은 김밥 기술에다 바리스타 자격증-혹은 이에 준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이 집은 최고 김밥집이 되었다. 최고가 된 후에도 메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내가 처음 주문했을 때보다 메뉴가 배로 늘어났다. 최고는 다르다.


새로 생긴 김밥집은  '최고김밥집'을 모델로 한 것 같다. 하지만 '최고김밥집'은 손님이 워낙 많아서 일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여긴 이제 오픈한 곳이니 사장님 한 명이다. 다행인 건지 벌써부터 쉴 새 없이 주문이 들어와 내가 대기하는 동안에도 콜이 여러 번 떴다. 혼자서 김밥을 말고, 커피를 내리고... 우리 사장님 많이 바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가 깨하고 귀여운 게 나름 오픈에도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다.


주문한 지 15분 뒤에 받은 포장김밥을 집에 와서 열어보았다. 1회용 도시락 뚜껑엔 귀여운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이런 디자인도 다 신경 쓴 거겠지.' 김밥을 하나 꺼내 음미했다. 다행히 맛있었다. 두 개째 먹으면서 '여기가 더 맛있네', 라고 생각했다. 여긴 '최고김밥집'과는 대표 메뉴가 다르다. 내 입맛에는 오히려 여기가 좋았다. 꾸역꾸역 먹으면서 우리 사장님들 정말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 걱정처럼 덧없는 걱정이긴 했다. 나보다 몇 배는 부자일 사장님들 걱정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잘난 그들이 모두 사장을 할 테고, 그러니 잘난 사람들끼리 경쟁이 얼마나 할까. 재능 한두 가지만 있어서 되는 세상이 아니다.  


동네 새로 생긴 바는 낮에는 카페다. 사장님은 낮엔 바리스타, 밤엔 와인 소믈리에다. 그러니 이 사장님은 몇 가지 자격증을 따고, 바를 근사하게 만드는 데 수천 혹은 수억을 들이고,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고, 퇴근 후 새로운 메뉴 연구도 할 것이다.


나는 동네나 회사 근처에 근사한 카페가 생기면 곧장 찾아간다. 하지만 오픈 때 한 번 가는 게 전부일 때가 많다. 한두 달 뒤엔 그 옆에 더 근사한 카페가 생긴다. 나처럼 줏대 없는 손님은 또 거기에 가서 사진을 찍고 만족해한다.


너무 명확하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고 어떤 데이터를 조사한 게 아니라서 정확한 진단은 아니겠지만 체험으로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근사한 가게 옆에 더 근사한 가게가 선다. 끝내주는 카페 옆에 더 끝내주는 카페가 생긴다. 맛있고 커피까지 취급하는 최고 김밥집 옆에 더 맛있고 커피 맛도 괜찮은 김밥집이 생긴다. 그러니 수많은 가게가 1년 내로 폐업 신고를 한다. 다들 너무 열심히 노력해서 1등으로 올라섰다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곳. 소비자들은 새것, 더 나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니까.


얼마 전까지는 나도 카페 사장님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접었다. 나는 이 근사함의 경쟁에 합류할 자신이 없다. 요즘 제일 핫한 유튜브도 경쟁이 치열하긴 마찬가지다. 영상, 편집, 기획 어느 한 가지도 모자람이 없는 어느 20대 유튜버에게 능력 있어서 좋겠다고 말하니 자신은 한참 모자란단다. 내가 아는 능력 있는 20대들은 모두 이 같은 이야길 한다. 자신은 지금 모자라서 초조하다고. 내가 보기에 들이 모두 '잘남 기차'에 탑승했기 때문이다.


'잘남 기차'는 KTX보다 세 배쯤 빠른 시속 1000km 정도로 움직이고, 이미 잘나고 빠른 것들이 앉아서 좌석이 없다. 늦게 탄 사람은 휘청대며 입석으로 가야 한다. 그러니 한 자리 얻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 그 빠른 열차 안에서 아우성을 치다가 누군가 밀어 떨어지거나, 스스로 떨어진. 이 열차에서 떨어지면 선로를 벗어나 크게 다친다. 예후좋지 않다.


만약 곧 떨어져 다칠 것 같다면 내려야 하지만 다 그러려니, 하고 탑승하고 있다. 이 속력 때문에 늘 심장이 빠르게 뛰지만 그 심장 박동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차에서 안전하게 내려올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어렵지 않다. 다음 정차역에서 문으로 내리면 된다. 원하는 곳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내렸다가 다시 타면 된다.


나도 이제 그럴 생각이다. 여기서 내 자리 없다고 아우성만 치다가 시간을 보낼 순 없다. 내려서 천천히 역사 주변을 구경할 생각이다. "다음 역 정차시간은 1분입니다." 문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다 안내방송을 듣는다. 잠시 고민한다. '1분만 쉬고 다시 탑승할까?'


아니, 나는 이 열차에 다시 탑승하지 않을 것 같다. 내려서 속력이 아주 느린 열차로 표를 바꿔서 탑승할 생각이다. 좀 낡고 느린 열차지만 경치도 구경할 수 있고 나같은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열차에서내 자리를 차지 수 있다.




- 그래도 김밥집은 두 곳 모두 성공할 것 같다. 세상엔 윈윈도 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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