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게 달릴 필요는 없다
첫 달리기는 여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계획을 짤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영상이었던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것이다. 이제는 낮에 외출하려고 해도 슬슬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하는 날씨가 되었다. 내가 가진 겨울옷이라고는 롱패딩 하나가 전부였다. 롱패딩을 입고 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반팔 차림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5~6도 아침 날씨에 반팔 차림으로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와도 1분만 지나면 살가죽이 따가울 지경인데, 하물며 영하까지 떨어지는 새벽 날씨에 그 짓을 하면 동상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 지랄 맞은 한반도 날씨를 욕하면서 옷장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옷장을 뒤졌더니, 내가 샀는지도 모르는 옷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에는 봄가을용 바람막이가 두 장, 역시 봄가을용 후드 집업 두 장이 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어설픈 레이어링이었다. 맨 아래 반팔, 그다음 바람막이, 마지막으로 후드 집업을 걸친 어정쩡한 세팅이었다. 긴 바지 중 그나마 두께가 있는 것은 두 장에 나머지는 전부 여름용으로 산 바람 숭숭 들어오는 바지라서 선택지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당분간은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첫 달리기에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찬 공기가 신발 앞코를 뚫고 양말을 신은 내 발을 때렸다.
양말도 두꺼운 걸 신었어야 했나, 중얼거렸지만 어차피 내가 가진 양말 중에 이 추위를 막을 만큼 두꺼운 양말은 없었다. 그저 겨울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를 탓하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파트를 나오자 영하의 공기가 내 볼을 얼얼하게 스쳤다. 그런데 어째 상체와 하체는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
"뭐야, 그렇게 안 추운데?"
스마트 워치를 보니 영하 1도. 내 몸은 생각보다 추위를 못 받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영하 1도가 이 정도라면, 이렇게 입어도 영하 10도까지는 가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몸을 풀지도 않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가 무색하게도 손이 땀으로 젖고 눈썹 밑으로 땀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코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헛기침을 했지만 이마저도 그저 상쾌했다. 귀가 떨어질까 몰라 쓴 후드는 어느새 뒤로 젖힌 채였다.
그렇게 내 첫 30분 새벽 달리기는 머리에 김을 풀풀 풍기면서 끝났다. 고작 세 겹의 옷으로(심지어 바지는 한 겹) 성공적으로 달리기를 마쳤다. 다만 손이 너무 시려서, 5분을 버티지 못하고 소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뛰었고, 그마저도 버티지 못해 연신 손을 비비면서 뛰었다.
겨울 달리기에 장갑이 필수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