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느 깔끔한 콘크리트 건물 사무실 안이나 너저분하게 옷가지가 굴러다니는 집구석 같은 곳에 있지 않다. 삶은 내가 한 발 한 발 지겹도록 내딛고 있는 이 길 위에 있다. 집구석이 아무리 정갈하고 깔끔해도, 카페가 아무리 은은하고 향긋해도, 삶은 그곳에 깃들지 않는다. 우리가 삶을 깨닫게 되는 때는 겨울날 귀를 잘라갈 것만 같은 칼바람이 묻혀온 먼지를 정면으로 받아낼 때다. 그러니 앞으로 삶을 알고 싶다면, 그냥 집을 뛰쳐나가시길. 새벽 가로등불도 다 꺼진 시간에 푹 가라앉은 찬 공기 한숨 들이마시면 바로 삶의 고통스러움을 어렵잖게 맛볼 수 있으니.
이렇게 삶은 쉬운 것이요, 또한 어려운 것이다.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린 뒤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알게 되지만, 언제나 그렇잖은가. 쉽게 쓰여진 것이 어려운 법이란 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두 눈 질끈 감고 냅다 달리는 일이다.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는 데 너무 똑똑하면 삶이 고달파진다. 똑똑하면 일단 서너 수를 제멋대로 앞서 보게 되니까.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하고, 그러자면 적당한 때에 멍청해질 수 있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하고자 하는 일에 바보같이 부닥쳐볼 수 있는 멍청함을 잘 쓰는 것.
물론 그러다 보면 좀 고난한 삶을 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역시 그런 걱정들마저 쌩깔 수 있을 정도의 멍청함이 있다면 딱히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살아가면서 하는 걱정의 태반은 괜스레 견줘보고 재보고 간 보면서 생기는 것들이다. 특히나 멍청한 걱정은 남들보다 뒤처질 걱정이다. 그쪽이랑 이쪽이랑 원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인데, 왜 굳이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맞춰 가려고 하는지. 하지만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앞서 얘기하지 않았나. 쉽게 쓰여진 게 제일 어려운 법이라고.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일을 할지도 모르고, 그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정보는 그냥 컴퓨터에서 끄집어내 쓸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멍청해져도 좋지 않을까. 인간은 지난 2천 년동안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똑똑해졌다. 이제는 다시 멍청해지는 법을 배운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멍청해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효율적일까, 어떻게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게 아니라, 이것저것 잴 것 없이 그냥 냅다 들이박는 법을 익혀야 할지도.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