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8.
이야기는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온다.
적어도 서사의 단편이 될 만한 아이디어 정도는 뜬금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샤워를 하다가도 문득 생각을 한다. 아,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쓰면 좀 재밌겠다. 주인공을 이런 사람으로 놓으면 좋겠는데. 지금 쓰려고 계획 중인 이야기에 이런 내용을 끼워 넣어 볼까? 아니면 이제껏 쓰다 만 이야기들을 잘 섞어볼까? 같은 생각들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편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막상 책상 위에서 펼쳐 보이려고 하면 금세 증발해 버려서 애를 먹는다. 어찌어찌해서 용케도 증발하지 않고 남았더라도 그걸 글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의식이 자꾸만 생각의 허점을 파고드는 탓에 이야기를 시작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어쩌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맨정신으로는 할 만한 일이 못 되는 것 같다. 차라리 무의식으로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글들이 훨씬 이야기스럽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그것이 지성과 감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지성은 뇌에서 나오고 감성은 무의식에서 나오고 뭐 그런 느낌인가 싶다.
그리 생각하면 결국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 고유의 무의식에서 제멋대로 생성하고 소멸하고 재생하는 플라스마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플라스마를 만들려면 초고온이 필요하다. 이야기도 그렇다. 이야기라는 플라스마, 그 짧은 흔적이라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직 내 마음속의 불꽃은 성냥불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