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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18. 2023

타보르산 자전거 여행

같이가는 여행

"자전거도 빌렸는데 같이 갈까?"


드디어 룸메이트인 필리페와 함께 하는 여행입니다. 계속 같이 어디 가자고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각자 갔던 여행을 이번엔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타보산(Mt. Tabor)입니다. 여기는 성경에는 '변화산'이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갈릴리에 가는 길에 올라가는 표지판을 봐서 당일에 다녀오기 적당한 거리로 골랐습니다. 필리페는 무릎이 안 좋다고 먼 거리는 힘들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기어도 잘 들고 괜찮은 상태의 자전거를 필리페가 타기로 했습니다. 전 중학교 때부터 자전거 여행을 해서 이런저런 요령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아침에 출발해서 시원한 기분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제 자전거는 기어가 고장이 나서 오르막에 뒤처질 것 같아서 필리페와 거리를 좀 떨어뜨렸습니다.


"너 너무 빨라. 나 힘들어"

"자전거 많이 연습했는데 힘들어?"

"나 무릎이 안 좋아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어. 지난번에도 갈릴리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돌아왔잖아"

"내 자전거가 기어가 안돼서 오르막이 나오면 내가 뒤쳐질 거야. 천천히 따라와"

"그래도 너 너무 빨라"


왠지 떨어져 달리는 게 싫은 것 같아서, 속도를 맞췄습니다. 곧 오르막이 나오자 필리페가 치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불러서 이야기했습니다.


"기어 때문에 난 오르막을 빨리 갈 수 없어"

"그럼 천천히 와"


아니 이놈이. 기다려 달랄 땐 언제고 이제 혼자서 기분을 냅니다. 괘씸해서 내리막에서 탄력 받아서 멀찌감치 앞서 갔습니다. 해놓은 말이 있어서 그런지 뭐라고는 안 하더군요.


50분쯤 지나서 쉬면서 필리페가 따라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했던 경험 상, 이 타이밍에 쉬는 게 몸에 배어있었나 봅니다.


"지금부터 10분 쉬자"

"난 무릎 때문에 천천히 오래 달리는 연습을 했어. 천천히 와"


나에게 익숙한 것이 어떤 사람한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이 장거리 여행도 아니고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도 갈 수 있어서 필요 없을 수도 있는데, 버릇이 나오더군요.


타보산 정상에는 가톨릭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어서 비잔틴 시절부터 수도사들의 성이 있었고, 아랍과의 전쟁이 치열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관할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특유의 친근함과 검소함이 묻어있는 교회 건물이 좋았습니다. 정교회나 다른 교회의 건물은 전쟁 중에 무너졌다고 합니다.


갑자기 왠지 둘이 하는 짧은 여행인데, 이렇게 맞추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서로에게 우호적인 관계라서 그렇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어디쯤에선 헤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서로 맞춰주기만 하다가 한 사람이 힘들어지면 그것도 안 좋겠지요. 단 둘도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무리의 리더가 된다면 매일매일 고민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함께 갔던 타보산은 즐거웠고, 덕분에 멋진 사진도 건졌습니다.


1. 타보산(Mt. Tabor): 성경에 예수님이 성스럽게 변화된 산이라고 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변화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계에서는 변화산은 다른 곳(헬몬산)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변이 거의 평지인데 이 산만 볼록 튀어나와서 전쟁할 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2. 프란체스코 수도회: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의 수도규칙'을 지키는 가톨릭 수도사들의 조직입니다. 작음과 청빈을 신조로 하고, 검소한 생활과 약자들을 위한 봉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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