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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달 Sep 15. 2023

갈릴리 자전거 여행

키부츠 키네렛, 폭탄탐지로봇

그렇지 여행을 해야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재미를 느끼다 보니, 왠지 게을러지는 것 같아서 다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갈만한 곳을 찾다가, 요르단에서 초대를 받았던 키부츠 키네렛이라는 갈릴리 근처의 키부츠에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갈릴리 오면 찾아와. 재워 줄게"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 초대는 받았지만 미리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리더를 통해서 전화할 수는 있었겠지만, 한국인 발론티어들끼리 한 약속이고 같이 쓰는 숙소에서 그냥 재워주는 거라 리더들에게 알려서 공식화시켜야 할 필요는 없어 보였거든요.


이번엔 자전거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필리페가 자전거를 구해서 타고 다니고 있어서 저도 오랜만에 자전거 여행으로 계획하고 자전거를 구하러 다녔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도 없다고 합니다. 식당 주변에 버려진 자전거를 주워서 고쳐보려고도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여행 계획을 말했더니 필리페도 자기도 같이 가자고 좋아하는데, 정작 저는 자전거를 못 구해서 결국 그 주 주말에는 필리페만 혼자 떠나고 전 예루살렘 여행.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를 아풀라까지 히치 해주던 요니라는 키부츠닉이 흔쾌히 자전거를 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음 주에 시작된 2박 3일 자전거여행. 혹시나 키네렛에서 못 자더라도 노숙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출발했습니다. 일 끝나자마자 오후 2시쯤 출발해서 중간에 길도 한번 잃고, 5시 2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크지 않는 나라. 다만 문제는 뜨거운 태양이었습니다. 건조한 사막의 날씨가 그대로 느껴지는 곳에서 자전거를 타려니, 요르단 와디럼에서 사막길을 함부로 갔다가 큰일 날 뻔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더군요. 그래도 여기는 그늘도 있고 주변에 마을도 있고 하니 큰일이야 나겠어하면서 계속 달렸습니다.


목적지인 갈릴리 호수 자체는 저지대인데, 주변이 병풍 같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지막 코스에 가파른 오르막의 고비가 한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올라간 후에 넓게 펼쳐진 호수를 향해서 내려가는 길은 '그래 이 맛에 자전거를 타는 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도착하자마자 한국인 무리를 만나서 잘 얻어먹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찾아갔어도 반갑게 맞아 주셔서 아주아주 감사했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인터넷 접속이 안 돼서 메일이나 키부츠 카페로 제가 물어본 것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갈릴리 호수 일주를 하려는 계획은 우연한 사건으로 무산이 됩니다. 한 방에 제 짐을 넣어놓았는데 그 방 주인이 열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들 휴일이라 일을 나가지는 않아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용케 찾았는데 곧 아침 시간이라고 밥 먹고 가라는 유혹에 빠져버리고. 10시부터 시작하는 식당을 기다리면서 수영도 하고 밥 먹고 나니 11시 30분. 어제 태양의 뜨거움을 몸이 기억해서 더 이상 움직이기가 싫더군요.


결국 하루를 쉬면서 갈릴리 호수 남쪽을 걸어 다니면서 구경했는데, 예수님의 세례터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관광객이 많은데 그때는 사밧데이라서 그런지 많이 없어서 살짝 구경했었습니다. 여기에 직접 침례를 하러 오는 순례자들도 있다는군요. 이 호수 자체가 예수님 활동의 주무대라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온다고 합니다.


다음날 새벽에 다른 사람들이 일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나와 12km 정도 달려서 티베리아스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유대인의 4대 성지 중 하나인데, 로마시대부터 도시로 발전됐다고 합니다. 갈릴리 주변의 다른 곳과는 달리 유대교 랍비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이곳이 3~4세기에 편찬되었다는 예루살렘 탈무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버나움까지는 가볼까 하다가 생각보다 빨리 더워져서 좀 더 안전하게 나사렛을 거쳐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나사렛은 다른 이스라엘의 고대 도시들처럼 산지에 있어서 계속되는 오르막을 각오해야 했거든요. 일단 갈릴리를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나자렛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폭탄탐지 로봇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있고 경찰이 통제를 해서 그냥 한 상점 앞 길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데 별안간 총소리가 세 번 울리더라고요. 간헐적으로 울려서 총격전은 아닌가 보네 생각을 했는데, 눈앞에 로봇이 지나가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군가 버려져 있는 배낭을 폭탄이 아닌지 신고를 했고, 경찰이 로봇을 원격으로 조정해서 폭탄을 탐지하는 과정에서 로봇에 달려 있는 총을 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보다 첨단 기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로봇을 보는 것도 벌써 두 번째인데, 여러 가지 분야에서 뭔가를 자동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쓰는 자동 설비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사람들은 참 실용적이구나'하는 것입니다. 투박하고 거창하지 않은 기기라도 현장에서 쓸 수 있게 만들면 누군가 사주고 그것을 쓰면서 점점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십 대부터 이런 간단한 발명품들을 만들어서 팔아보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군인으로 징집 돼서도 소수의 이스라엘 군으로 주변 국가와 대치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대도 이런 실험적인 기술들을 구매하는 중요한 고객 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이날 알았는데, 나사렛에서 기네갈까지는 15분 거리였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집이더군요.


1. 예수님 세례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 실제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례터는 사해 북쪽의 요르단 땅에 있는 곳인데 요르단 땅이라 접근하기 쉽지 않고, 이스라엘에서 공식적으로 갈릴리 남쪽의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성지순례 온 김에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더 많다고 합니다.

2. 침례: 기독교의 다시 태어난다는 세례의식의 일종으로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궜다가 나오는 형태를 말합니다.

3. 티베리아스(Tiberias): 역사 이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고, 로마의 지배 시절에 의해 도시화될 때 이미 있던 조상들의 무덤이 파헤쳐졌다고 이주를 거부하다가, 독립운동 이후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이 이곳에 모이면서부터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한 랍비들이 많이 있었던 곳으로 유대교 신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가버나움: 성경에 나오는 성인이 된 예수님의 주요 활동지로,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 중에 하나입니다.

5. 나사렛: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모님이 살던 곳. 천사가 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을 예언했고, 어렸을 때 자란 곳으로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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