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기
화성이 가까이 보인다는 날이었습니다.
우기가 아니면 하늘이 거의 맑은 동네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눈으로 한번 봐주기로 했습니다. 화성이 태양의 반대쪽으로 올 때 밝아진다는데, 유난히 가까워지는 때는 천문쇼라면서 뉴스에 나오곤 하더라고요.
저녁 10시쯤 유난히 밝은 별을 봤는데, 이게 진짜 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밝았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해서 검증해 본 결과 방향도 맞고 움직이는 속도도 별 같아서 12시쯤에 화성이라고 확신하고 구경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약간은 무서운 느낌도 들더군요. 화성은 샛별인 금성과는 다르게 흉성에 가까워서 전쟁을 몰고 다닌다는 전설들이 있어서 조금 더 그랬나 봅니다.
2주쯤 후에 한국에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풍 피해가 심했다는 뉴스와 함께 친구의 부고를 들으니, 타지에 와있다는 것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더군요. 한국에 있으면 합동장례식이라도 가서 같이 애도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냥 혼자서 우울하게 애도할 수밖에 없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잘 몰랐겠지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난 상태에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쉽게 친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모르기도 하고 알 필요도 없어서, 지금 눈앞에 모습만 보면서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고 상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줄 준비가 되어 있곤 하지요. 하지만, 이런 슬픔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함께 할 수 있을지 감도 안 오더군요. 사실 그 친구들한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혼자서 술이라도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그 친구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여행 나오기 전에 그 친구와 했던 대화를 기억하면서, 그 죽음에 제 책임도 일부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았었습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혼자서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 찾아가기도 하고, 지금도 9월에 태풍이 오거나 비가 오면 혼자서 그 친구를 기억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저도 여행을 하면서 위험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하고, 강도도 당하고, 배낭을 잃어버릴 뻔하기도 하고, 사막에서 길을 잃을 뻔도 했었습니다. 여행자를 노리는 소매치기나 좀도둑, 사기꾼들은 늘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여행자들은 타지니깐 생소한 곳이니깐 하면서 조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닥치는 불의의 사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를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익숙한 직장, 구석구석 잘 알고 있는 동네에서 살아가다 보면 조금은 방심하게 되고, 그것이 깨질 수 있고 심지어 이미 깨졌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달까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고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행복의 가장 큰 요소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반대로 불안이라는 것은 심해지면 병이 되기도 하고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어떤 철학자는 불안을 사람이 가진 근본적인 정체성이면서 바르게 살기 위한 내면적인 장치라고도 하더라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면 내가 안전하다는 느낌은 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안전하고 모든 것이 잘되고 있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고요.
어느 시점부턴가 여행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약간은 자유롭게. 약간은 불안하게.
1. 화성이 가까워지는 주기: 약 2년 2개월 주기로 지구와 화성이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이때 화성은 태양의 정반대 위치에 있어서 자정에 정남에 위치하게 됩니다.
2.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을 제 마음대로 해석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