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시
"키프로스로 가는 배편은 중단되었습니다."
어디선가 하이파에서 키프로스로 가는 배편이 있다고 해서, 키프로스를 거쳐서 튀르키예로 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아와 다시 긴장 관계가 되어서 키프로스 여객선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하이파를 여행할 때 여행사에 들러서 물어봤는데, 이제 튀르키예로 바로 가는 수밖에 안 남았네요. 왠지 편해지는 마음. 어떨 땐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가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이번 여행은 버스로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필리페와 자전거로 가려고 했는데, 너무 먼 거리 같다고 전날 포기하고 나이트클럽으로 가더군요. 마침 저도 운동용으로 만든 목검에 덧대놓은 쇠붙이에 손이 찢어져서 여행을 포기할까 하다가 그냥 버스로 떠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가는 길이 좋긴 하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피곤한 것이 여행을 방해할 때가 있는데, 이번 여행은 버스로 가게 돼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바하이가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합했다는 바하이교의 본부에 있는 정원인데, 잘 꾸며놨고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산 한쪽을 완전히 정원으로 꾸며놨는데, 정문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면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곳 이상은 신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미리 예약을 받으면서 신분검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경비원한테 물어물어 주위를 빙 둘러 올라가서 다른 문을 통해 들어가는 단체관광객에 묻어서 내부를 조금 더 구경했었는데, 관광객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계속 통제하기도 했었습니다.
쟁쟁한 다른 종교들의 성지가 즐비한 이곳에 이런 신흥종교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렇게 큰 부지에 말 그대로 궁전을 짓고 보안도 철저하게 성주처럼 사는 것도 대단해 보였습니다. 뭐 한국의 신흥 종교들도 그런 경우가 있으니 바하이교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요.
시내를 구경하면서 걸어서 하이파의 바다와 도시가 잘 보이는 Stella Maria Church로 가서 잠깐 쉰 후, 엘리야의 동굴을 찾아갔습니다. 동굴로 가는 길은 바닷가 절벽 쪽으로 난 오솔길이었는데 바다를 보면서 내려가는 풍경이 아주 멋졌습니다. 이곳은 유대인의 성지로 예전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그 당시 지배자를 피해 숨어 살았던 동굴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성지에 들어갈 때는 남자는 '키파'라는 모자를 쓰고 들어가야 해서 하나 빌려서 쓰고 들어 갔습니다. 곳곳에 앉아서 코라를 읽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여러 가지 상징들과 문구들을 보면서 구경하는데, 웬 동양인이 왔는지 저를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동굴에서 나와서 더 내려가 National Marintime Museum과 Navy Museum을 구경했습니다. 해양박물관은 규모는 작아도 지중해를 낀 해양민족의 영역이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답게 알차게 꾸며놓았었습니다. 시대별로 사용된 배들이 유럽하고는 또 다른 모습들이더군요. 지중해의 해양 역사를 이 지역 중심으로 구성해 놓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해군박물관에는 이스라엘 초창기 정착의 역사가 많이 보였습니다. 하이파가 초기 정착민들이 들어오던 항구이기도 하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유대인 입장에서는 다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많이 어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영토가 넓어지기 전에는 스스로 신도시를 만들어 가면서 살았어야 한다는군요.
이스라엘도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1. 바하이교: 19세기에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이슬람계 신흥 종교. 스스로 이맘이라고 선포한 바하 올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로 이란 등 시아파의 박해를 피해 지금은 이스라엘 하이파에 세계본부를 두었다고 합니다.
2. 코라: 유대인의 경전으로 구약성경의 모세오경과 같다고 합니다.
3. 선지자: 신의 말씀을 대신 이야기라는 사람. 예언자라고 쓰기도 합니다.
4. 해양민족: 하이파는 페니키아 인이라는 해양민족이 지배한 지역에 속합니다. 지중해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는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과 알파벳의 원조라는 것이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