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벤처스 with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
창업 후 저희가 만난 가장 큰 행운은
카카오벤처스를 만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카카오가 초창기 스타트업의 스피릿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멋지죠.
총성 없는 기술 전쟁터에서 AI 반도체는 승기를 쥘 수 있는 최고의 전략물자로 꼽힌다. 이 치열한 전장에서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2020년 9월 창업 후 2022년 7월 시리즈 A까지 총 3회에 걸쳐 1,120억 원을 유치하며, 기업 가치 4,000억 원을 인정받았다.
리벨리온의 시작에는 카카오벤처스가 있다. 카카오벤처스는 모든 혁신가의 출발점에서 함께 하고자 하는 극초기 단계 투자자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명감을 가진 창업가, 그들에게 투자함으로써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리벨리온에는 ‘기세 좋은’ 업계 어벤저스가 모여 있다. 박성현 대표는 인텔랩스·스페이스X·모건스탠리 등에서 굵직한 경험을 쌓았고, IBM 왓슨연구소의 AI 반도체 수석설계자였던 오진욱 CTO는 구글·MS까지 미국 3대 AI 연구소를 모두 거쳤다. 스타트업 생태계로의 안착을 도운 김효은 CPO는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에서 딥러닝 개발을 지휘했다. 카카오벤처스는 이들이 만든 리벨리온이 미래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처음 AI 반도체 생태계에 스타트업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의 각오가 궁금합니다.
AI 반도체의 잠재력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월스트리트에서 퀀트 트레이딩을 할 때 실제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봤어요. 오진욱 CTO도 같은 생각이었죠. 소위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과 ‘기술을 가진 공동 창업자’, 이 두 가지가 합쳐지는 순간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술은 반 발짝 앞서가면 승기를 잡을 수 있어요. 너무 빨리 나와도, 늦게 나와도 망하죠. AI 반도체는 준비하고 있으면 딱 바람이 불 것 같았습니다.
미국에서 11년 동안 기반을 다졌는데, 굳이 한국에 들어와 창업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이 반도체 설계 인력과 개발 환경 면에서 더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유수의 파운드리가 있는 것도 큰 장점이고 국내 AI 반도체 수요도 높죠. 그리고 세계적인 AI 반도체 기업을 한국에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뛰어들고 보니 반도체는 국가 전략 물자로 취급되더군요. 한국에서 창업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카카오벤처스의 물심양면 지원도 받고 있고요. 아마 카카오벤처스가 아니었으면 창업이 매우 늦어졌거나 아예 시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창업 후 저희가 만난 가장 큰 행운은 카카오벤처스를 만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카카오벤처스의 투자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나요?
일단 카카오벤처스는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나 투자받고 싶어 하는 최고의 투자사예요. 카카오가 초창기 스타트업의 스피릿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멋지죠. 김기준 부사장이 첫 미팅에서 바로 투자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큰 위로와 용기가 됐어요. 그때 주셨던 자신감이 지금까지 온 동력이 됐습니다.
또 지난해 시리즈A까지 1,120억 원가량 유치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셨죠. 시드 라운드에서 서울대 기술지주, 지유투자 등을 모아주셨고, 그 후 시리즈A에서도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파빌리온캐피털이 620억 원을 투자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카카오벤처스는 라운드 세 번 모두 다 투자했고요.
투자에는 리벨리온의 기술과 역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텐데요, 현재 개발 중인 AI 반도체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요.
세계 반도체 시장은 CPU·GPU를 넘어 NPU(Neural Processing Unit)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NPU는 대규모 연산을 초고속·초저전력으로 실행하는, 효율성 측면에서 특화된 AI 딥러닝 전용 반도체죠.
저희가 만들려는 건 만능 맥가이버 칼이 아닌, 필요에 맞는 전용 칼입니다. 흔히들 맞춤형 기술은 굉장히 쿨하고 섹시하지만 시장 볼륨이 작다고들 생각해요. 범용은 시장은 크지만 기술적인 엣지가 떨어지고요. 그런데 AI반도체는 맞춤형으로 가도 볼륨이 커지죠. 금융 트레이딩이든 자율주행이든 특정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주문형 AI반도체, 여기에 전력 사용량까지 획기적으로 줄인다면, 속도가 생사를 가르는 기업 입장에선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현재 리벨리온은 금융 거래 특화 NPU ‘아이온’, 클라우드 서버용 NPU ‘아톰’에 이어 초거대 AI 모델을 돌릴 수 있는 ‘리벨’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매개변수가 더 큰 LLM(거대언어모델)이나 생성형 AI를 타깃으로 하죠.
투자 외에도 카카오벤처스에게 도움받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
카카오 공동체와 협업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대표적으로 AI 연구개발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과 정기적인 기술 교류를 하고 있어요. 또 창업자들이 원하는 감정적인 서포트도 해주시죠. 카카오만의 스피릿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카카오벤처스는 스타트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투자사예요. 성과가 있을 때 자랑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카카오벤처스뿐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계속 믿음을 주셨어요.
믿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비결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벨리온의 상황을 최대한 오픈했어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것만큼 확실한 시그널이 없거든요. 최근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계속 합류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기세 싸움이에요.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을 살펴보면 기세가 굉장히 좋아요.
대표님에게도 씩씩한 기세가 느껴집니다. 리벨리온에 지금까지 모인 90여 명은 어떤 인재인가요?
목마른 사람들이죠. 창업 당시 이미 팀의 컬러와 바이브가 생겼고, 거기에 맞는 사람들이 계속 합류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수평적인 조직이 가능해지려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디렉션이나 매니징이 필요 없는 프로페셔널이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속도전이기 때문이죠. 스타트업은 전력을 다 갖춰서 전투에 나가는 게임이 아니에요. 불가능한 것도 에너지 레벨로 밀고 나가야 해요. 불과 2년 전 사업계획서를 다시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많거든요. 다이내믹한 상황에서도 계속 흐름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스타트업이 가야 하는, 그리고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이죠. 모두가 항상 사선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선에서 여러 성과가 나오고 있네요. 지난 4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AI 반도체 성능 테스트 대회인 ‘엠엘퍼프(MLPerf)’에서 엔비디아와 퀄컴을 앞섰습니다.
기존 제품들을 이기는 건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압도적으로 좋은 결과는 예상치 못했죠. 퀄컴이나 엔디비아가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들이 나오는 자리거든요. 이후 M&A 등 여러 제안이 오고 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