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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쇼트트랙에 강한 이유

6개월 만에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이 내가 사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을 다시 찾았다. 2022-23 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월드컵은 지난 10월 28일 몬트리올 1차 경기를 시작으로 미국, 카자흐스탄, 독일, 네덜란드까지 차례대로 돌며 내년 2월 총 6차 경기까지 진행된다.


몬트리올 개막경기에 참가한 대표팀에는 금메달리스트 곽윤기, 황대헌, 김아랑 등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빠졌다. 새로운 멤버들로 처음 호흡을 맞추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5천 미터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맹활약을 보여주어 앞으로 이어지는 경기들 역시 매우 기대가 된다.


몬트리올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과 경기 뒷 이야기는 아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https://youtu.be/TRSJMVHbxwE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는 네덜란드, 캐나다 같은 나라는 스케이트가 국민 스포츠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실제로 스케이트를 타는 인구 역시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 춥고 긴 겨울이 오면 도시의 얼어있는 강 위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탄다. 걸음마를 막 떼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스키나 스케이트 배우는 모습 역시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부모에게 그렇게 스키와 스케이트를 배웠을 것이다. 


주몬트리올 영사관에 근무할 때, 2018년 평창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퀘벡 스키협회의 갈라쇼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는데, 이때 캐나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실제로 보니까 소속팀 없이 혼자 아마추어로 타다가 국가대표가 되는 선수들이 꽤 많았다. 한국처럼 어릴 때부터 집중 훈련을 시키는 영재 제도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동계스포츠를 접하다가 국가대표까지 온 것이다. 이곳에 어릴 때부터 "영혼을 갈아 넣는다." 이런 개념은 없다.


2018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쇼트트랙 세계 선수권 대회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런 환경과 문화 속에서 자란 다른 나라의 선수들을 이기고 세계 쇼트트랙 강국이 되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뼈를 깎는 연습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대부분의 운동부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충실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의 사적인 추억은 물론 수학여행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운동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국가대표라도 되면 좋지만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동계 올림픽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쇼트트랙은 비인기 종목이다. 선수가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선수 생명이 짧고 연봉도 또한 매우 낮다.(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곽윤기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세전 5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국제 경기에서 다른 나라들과 겨루는 선수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나면 정말 눈물이 날정도로 멋있고 감동적인데, 그에 비해 그들이 받는 연봉과 관심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은메달, 동메달만 따도 뛸 듯이 기뻐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1등을 하지 못하면 숙연해지는 모습도 안타깝다.


선수들의 그런 노고를 상상하며 경기를 직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울컥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다. 교민 중 한 사람으로서 이국땅에 승리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더더욱 그렇다.  


경기를 마치고 아이스링크를 빠져나오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많은 교민들이 기다렸는데 그중 한 분이 이날 열린 경기 티켓에 사인을 받으려 이준서 선수에게 내밀었다. 그 티켓의 가격을 본 이준서 선수가 티켓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교민에게 물었다. 이날 일반 티켓의 가격이 캐나다 달러로 $45 정도이니 한국돈으로 4만 7천 원 정도다. 대학로의 연극보단 조금 비싸고 뮤지컬이나 콘서트보단 조금 저렴한 가격인 것 같다.(물론 한국의 공연 티켓 가격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저렴한 편이다.) 생각해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제 돈 주고 경기장에 가서 쇼트트랙을 보는 국내 관객이 적기 때문에 선수들이 더 놀라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가 되면 메달은 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실력은 이미 월드 클래스라고 생각한다. 스타플레이어가 없고, 쇼트트랙 문화를 꾸준히 잘 홍보하는 에이전시가 없어서 국내 경기가 국제경기에 비해서 인기가 적은 것 같다. 다행히 요즘에는 곽윤기 선수나 김아랑 선수처럼 공중파 예능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스타플레이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유튜브 개인 채널을 직접 운영하며 스스로 자신을 홍보하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어린 쇼트트랙 팬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지금처럼 얼굴 아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많이 있을 때 그 얼굴들을 잊지 말고 국내 활동들도 꾸준히 응원해야 우리가 즐거울 일이 더 많고 한국 쇼트트랙 꿈나무들의 미래 역시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지금도 빙상 위를 달리고 있을 우리의 젊은 국가대표들의 노력을 우리가 조금 더 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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