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횡단 로드트립 7일 차, 로키산맥 온천, 그리고 삼겹살과 소주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텐트를 쳤다
몬트리올에서 이곳 밴프 국립공원까지 약 4천 킬로미터를 7일 동안 달려오면서 그렇게 꿈꿔왔던 순간이다. 그 느낌을 말로 다 표현할 순 없겠지만 마치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배우를 만난 느낌이다. 한국에서 동네 캠핑장이나 다니던 일개 아마추어 꼬마가 로키산맥의 한 자락에 텐트를 치다니.. 내가 쳐놓은 텐트를 보고 또 봐도 너무 뿌듯하다. 밴프에 텐트를 친 기념으로 오늘 밤에는 꼭 바비큐를 해야겠다.
캠핑장은 여름 성수기를 맞이하여 이미 만석이었다. 캐나다 전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인종과 연령대는 다양했다. 다양한 지역의 자동차 번호판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캐네디엔 로키에는 캐나다 연방과 앨버타주 등에서 관리하는 공원이 10개가 넘게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건 역시 밴프 국립공원과 재스퍼 국립공원이다. 지대가 높아 한여름에도 꽤 쌀쌀한 이곳 캠핑장들은 날씨 때문에 여행 성수기가 짧아 예약이 어렵고, 극성수기에는 호텔 가격 또한 비싸다. 로키산맥의 자연을 오롯이 즐기기엔 캠핑이 제격이지만 예약은 조금 서둘러야 한다.
밴프 국립공원은 그 규모만큼이나 크고 작은 관광지가 많다. 스폿 간의 거리가 꽤 먼 곳도 있는데 밴프 타운에서 루이즈 호수까지만 왕복해도 100km가 넘는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려면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는 게 중요하다. 밴프타운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면 설퍼산과 근교 호수를 둘러본 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재스퍼까지 여행 일정이 일반적인 코스이다.
우리는 우선 밴프 타은 근교에서 노천욕을 하기로 했다. 밴프 타운으로부터 5km 정도 떨어진 설퍼산 곤돌라 승강장 옆에 로키산맥에서 솓아나 온 온천수로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밴프 어퍼 핫 스프링(Banff upper hot spring)이라 불리는 이 노천온천은 가격도 $9.25로 매우 저렴하다. 지난 7일 동안 매일 800km 정도를 운전하느라 피곤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라 오늘은 조금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로키의 산자락을 바라보며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상상만으로도 지난 일주일간의 피로가 싹 달아난다.
지대가 높고 그마저도 더 높은 산에 둘려 싸여있다 보니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낮은 편인데 따뜻한 노천탕에 몸을 지친 몸을 담그니 노곤 해지는 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정말 쌓였던 여독이 스르륵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다. 하루 평균 800km씩 7일을 운전하다 보면 틈틈이 스트레칭을 한다고 해도 몸이 많이 찌뿌듯하고 굳기 마련이다. 장거리 운전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온천을 둘러싸고 있는 경치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내생에 자그마치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두르고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2년 동안 살던 집을 정리하고 떠나온 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집도 절도 없다. 작은 이탈리아 소형차 피아트 500과 그 안에 실려있는 살림살이가 내가 가진 전재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너무나 부자 같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역시 달콤한 행복은 항상 지독한 시련 뒤에 찾아오는 법이다. 참고로 이 노천 온천탕은 늦은 밤까지 운영하니 밴프에서 캠핑을 하는 여행자라면 마지막 일정을 노천욕으로 마무리하고 텐트로 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모닥불을 피웠다. 밴프까지 오는 동안은 빠듯한 일정에 모닥불을 피우는 일이 사치 같이 느껴졌다. 오늘 스스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친히 나무에 불을 붙였다. 밴프까지 와서 텐트를 치고 제일 먹고 싶은 메뉴는 고작 삼겹살에 소주였다. 밴프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기념하기 위하여 소주잔도 샀다. 하나는 무스가 사냥총을 들고 있고, 다른 하나는 곰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밴프의 기념품이다. 술을 너무 많이 따르면 무스와 곰이 익사해 버릴 거 같아 술을 적당히 채워마셔야 했다. 애피타이저로 소시지와 소고기 먹을 동안 만들어진 숯 위에 삼겹살을 올렸다. 이 날의 메인은 소고기가 아니라 역시 삼겹살이다. 내 인생에서 행복은 항상 가진 부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았다. 중학교 올라가던 해 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났고 우리 가족은 고모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했지만 사촌 형, 누나와 지내며 쌓은 추억은 아직도 내겐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결혼 하자마 마자 단돈 천만 원 들고 넘어온 캐나다에서 와이프와 나는 마트에서 산 쌀을 짊어지고 지하철에 탄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경험 역시 오히려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행복은 얼마를 소비했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지도 모르겠다.
캠핑장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우리의 이야기도 점점 깊어진다. 모닥불 앞에선 왠지 진실만 말해야 할 것 같은 밤이다. 지난 3년, 외국에 살이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해소하려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필리핀에 가 영어를 배웠던 시간, 나는 영어를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배웠다. 계획했던 호주행이 비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취소되고 급결정하게 된 캐나다 이민생활, 정착하고 영주권을 취득하기까지 물러설 곳이 없었던 무모한 도전과 에피소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밴프까지 달려온 지난 7일 동안의 우리 여행 이야기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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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찍었던 사진과 영상, 많이 들었던 음악을 모아 짤막한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댓글에 링크를 남겨둘 테니 여행의 분위기와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인 작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