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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한 번만 여행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갈까?

7일 차 밴프 국립공원 입성

누구나 버킷리스트에 담아둔 여행지 한두 곳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중 한 곳이 바로 밴프였다. 밴프는 캐내디언 로키의 대표 국립공원이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4,800여 킬로미터의 초대형 산맥인 로키 산맥, 그중에서도 캐내디언 로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밴프 국립공원인 것이다. 일본 유명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동명 연주곡으로 더욱 주목받는 루이스 호수를 포함해 영롱한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수도 없이 많고, 북쪽으로 제스퍼 국립공원까지 달리는 200km의 산악도로는 빙하가 된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죽기 전에 한번 꼭 가보아야 할 드라이브 코스다. 오늘 나는 그 밴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밴프 타운으로 들어간다.  캐나다 횡단 여행을 계획할 때 보고 싶은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보았다. 그중 1등은 단연 밴프였다. 밴쿠버는 우리 여행의 반환점으로써 의미가 있었다면, 밴프는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었다. 뉴욕이 북미 도시 여행의 꽃이라면 밴프는 단연 북미 대자연 여행의 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의 캠핑을 할 예정이라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었다.  



캘거리 도심을 벗어나 밴프로 향한다. 캘거리에서 밴프는 약 두 시간 거리다. 캘거리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제일 가깝고 국제공항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밴프를 가기 위해 캘거리를 거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에서 캘거리까지의 직항은 없어 밴쿠퍼를 경유하거나 밴쿠버에서 차를 렌트해 밴프로 직접 향하기도 한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몬트리올에서부터 약 4천 킬로미터를 달려 캘거리까지 달려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밴프 여행이 캘거리부터 시작된다는 건 로드트립 여행자나 비행기 여행자나 똑같다. 캘거리에는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는 물론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있으니 밴프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준비를 해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밴프에 머무는 동안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래본다. 어제 캘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엄지손톱만 한 우박이 내렸고,  지난 뉴스를 살펴보니 그간 캘거리의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홍수로 침수된 지역도 있어서 혹시 산에 고립이라도 되지 않을까 조금 염려가 되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거대한 로키 산맥은 점점 더 우리 코앞으로 다가왔고 어느새 육안으로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이라 그 모든 장면을 놓치기가 싫었다. 희한하게도 록키산맥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날수록 걱정보다 설레는 마음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로키는 마치 블랙홀처럼 우리를 순식간에 빨아들였고 어느새 우리는 그 산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지난 며칠 수천 킬로미터의 지평선을 달린 끝에 마주한 로키산맥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성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산세를 휘감으며 굽이굽이 난 도로의 모습이 SF 영화의 한 스틸컷처럼 느껴졌다. 너무나도 고요한 나머지 폭풍전야 같아 더럭 겂이 나기도 했다. 그만큼 초현실적인 풍경이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키산맥은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 나도 잠시 차를 새우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밴프를 잠시 실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잿빛 물의 호수가 인상적이다. 아마도 석회 성분이 있는 호수 이리라. 흐린 오늘의 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산 속이라 날씨가 조금 썰렁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지난 퀘벡 여행 중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퀘벡 후드티를 꺼내 입었다. "우리는 저 멀리 4000km 떨어진 퀘벡에서 운전을 해 여기까지 왔다고!!"라며 마음껏 허세를 부렸다! 평소 사진 찍는 건 좋아해도 찍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도 이 순간만큼은 셀카를 남겨야만 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린 다시 밴프 국립공원을 향해 달렸다. 캘거리에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밴프로 향하다 보면 처음으로 만나는 로키산맥의 도시는 바로 캔모어다. 캔모어는 밴프에 버금가는 경치를 가지고 있지만 숙가 밴프에 비해 저렴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밴프가 남성적이라면 캔모어는 좀 여성적인 아기자기함이 있다. 꽃이 많고 건물에 벽화 또한 많아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동화 속 꿈과 환상의 나라 캔모어의 현실은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 항상 동화와 현실 사이에는 괴리감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어른들의 동심을 파괴한다.   



캔모아를 지나 조금만 더 달리면 곧 밴프를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생긴 톨게이트가 보인다. 공원의 규모만큼이나 매표소도 스케일이 있다. 이곳에서 밴프에 머무는 날짜만큼 계산에서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루 요금은 $10.5이고 캐나다 전체 국립공원에 무제한으로 드나들 수 있는 연간 패스는 $72.25니, 제스퍼 국립공원 등 다른 공원과 연계하여 7일 이상 머무를 계획이라면 연간 패스를 구매하는 것이 현명하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차에 부착하는 입장권을 주고 밴프 국립공원에 머무는 동안 밖에서 보일 수 있도록 잘 비치해 두어야 한다. 입장료까지 지불하였으니 이제 정말 밴프다.


이상한 나라에 와있는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2년 전 캐나다에 처음 와서 이민자로 살아오며 있었던 많은 일과 이곳까지 달려온 4,000km의 길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조금은 애매한 나이에 이민을 와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많이 잃었지만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많이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돈만 주어서는 사지 못할 경험과 생각들, 책에도 인터넷에도 나오지 않아 직접 해봐야지만 알 수 있었던 것들. 밴프를 달리면서 내가 가진 그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제 정말 다 왔다. 험한 산봉우리들이 그 자세를 들어냈다. 처음 봤음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밴프 입간판의 글씨체. 드디어 밴프에 있는 시내로 들어왔다. 밴프 타운은 이곳 캐네디언 로키 여행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으로 크기는 크지 않지만 많은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식료품점과, 기념품점, 주유소 등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 것들이 여기 모여 있다!! 밴프에 머무르는 동안 필요한 몇 가지를 먼저 구입하기로 했다.


그중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은 소주... 캐나다에 살았던 지난 3년 동안 소주를 마신 일은 손에 꼽힌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밴프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특별 메뉴를 선정했다. 소주를 구매하면서도 이곳에 소주가 팔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2020년 어느 한 조사에서 세계 주류 판매량 Top 10에 소주가 두 종류나 들어 있었다. 이 결과가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이유는 소비량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주류 소비가 그만큼 소주에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저렴한 값에 빨리 취하려고 소주를 많이 마셨지만 외국 생활하면서는 반대로 비싸서 못 먹는 게 소주다. 캐나다에 오기 전 술집에서 먹어도 3천 원이면 마시던 소주를 7~8배 가격에 팔고 있는 캐나다를 상황을 보면, 차마 그 돈 주고 먹기는 아깝더라. 그래서 외국 살면서 소주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특별한 술이 되었다. 오늘은 캐나다 생활에, 그리고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날이라 밴프의 캠핑장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할 예정이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밴프 시내를 조금 돌아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방법과 목적을 가지고 밴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며 뿜어내는 에너지가 마구 느껴지는 거리였다. 사람에게서도 에너지가 오겠지만 밴프타운 어디에서나 보이는 산에서도 분명 좋은 에너지가 뿜어 나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항상 관광지에 살고 싶어 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좋은 에너지를 매일 받고 싶어서일 거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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