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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여행을 멈추지 않는 커플이 되게 해 주세요

캐나다 한가운데서 느낀 로드트립의 매력, 5일 차 앨버타주 입성

리자이나의 쏟아질 것 같은 별을 아래에서 어젯밤도 무사하게 하룻밤을 낫다.

오늘은 아마도 앨버타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다.



집 떠나온 지 5일 정도 되니 이젠 텐트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상과 동시에 침낭을 개고 나와 나는 짐을 꾸리고 줄리는 아침을 한다.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처럼 빠른 속도로 침낭을 개고 텐트를 접는다.

거의 기계적이라고나 할까.


매일 이동하는 로드트립용 텐트를 찾는다면 

자고로 빠르게 피고, 빠르게 접을 수 있는 게 최고다.

그리고 접었을 때 부피까지 작고 가벼우면 금상첨화다.



여행 예산이 아무리 적어도 투자를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텐트와 침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고 하지 않는가. 캠핑을 하는 로드트립에서 텐트와 침낭은 '주'를 담당한다. 눈이나 비를 만날 수도 있고, 바람을 만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추위를 만날 수도 있다. 특히 캐나다를 여행한다면 한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한 곳이 많이 있다. 한번 쓰고 버릴 생각으로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예산이 조금 넉넉하여 투자할 수 있다면 텐트와 침낭에 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이 여행기에 등장하는 침낭과 텐트를 7년째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줄리는 이제  여유 있게 모닝커피까지 한잔 하는 여유가 생겼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믹스커피와 컵라면을 만든 사람은 여행자들에게 상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해외여행 중 한국의 맛이 그리울 때는 사발면과 믹스커피 하나면 끝난다. 재미있는 건 커피 맛있기로 유명한 유럽 사람들도 믹스 커피 맛을 한번 보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거다. 달달한 믹스커피의 맛과 그 간편함은 커피를 뛰어넘는 장르이다.

  


작은 도시 리자이나를 드디어 떠난다. 어젯밤에는 별이 너무 아름다웠고 옆 사이트에 캠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흐뭇하게 잠이 들었다. 떠나기 전 운 좋게 캠핑장 근처에 우체국을 찾을 수 있어서 밀린 숙제 또한  끝냈다. 2천 킬로미터를 애물단지처럼 들고 다녔던 통신사 모뎀을 드디어 소포로 보낼 수 있었다! 짐이 이렇게 하나 줄었구나. 트렁크가 꽉 차서 후방 확인이 어렵던 내 차는 이제 룸미러를 통해 어렴풋이 뒤에 달려오는 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뎀은 원래 우리가 살고 있던 몬트리올에서 온타리오주의 토론토로 보냈어야 하는데, 주말과 공휴일이 끼어 토론토를 한참 지난 리자이나에서야 보낼 수 있었다.(지난 이야기 "아무것도 없다던 캐나다의 중부는 별로 가득 차 있었다." 참고. 아마 이 날 모뎀을 보내지 못했으면 밴쿠버까지 캐나다 횡단을 함께 했을지도 모르겠다.)



소포를 붙이고 와보니 옆에 랭글러가 한대 서있다. 우리의 피아트 500이 오프로드의 왕자 랭글러보다 더럽다.

몬트리올에서부터 약 3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수많은 모기 때와 하루살이들을 만났고, 그래서 자동차의 앞 범퍼가 로드킬 당한 벌레들 때문에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너무 잔인해서 차의 전면부를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밴쿠버에 도착하면 꼭 세차를 하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럼 오늘도 한번 달려볼까!!! 오늘 하루 캘거리까지는 조금 지루한 평원지대가 또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캘거리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면 우리가 그토록 기대하던 밴프를 만날 수 있다. 밴프는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이자 캐나다 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만난 캐나다 전도. 지도 속에서 우리가 지난 4일 동안 얼마나 달려왔나를 확인해 보니 감개무량했다. 지난겨울에 핼리팩스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는 캐나다 완전 횡단의 꿈을 이루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랜드 슬램을 이룬 것만큼이나 감개무량한 일이다. 3년 전에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3년 만에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이민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민을 떠날 때 "내가 무엇을 얻을지"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내가 무엇을 잃을지?"에는 수없이 적을게 많다는 거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이민을 오는 케이스라면 가족과 친구들, 한국에서 쌓아왔던 커리어들을 포기하고 이민을 떠나게 된다. 모국어 대신 낯선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동안 즐겨가던 단골 식당이나 옷가게, 하다못해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즐겨보던 예능프로그램도 포기해야 한다.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담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눌러 담은 캐리어를 밀며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 가방에 든 것이 내 인생의 전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 외국 생활 기간이 늘어날수록 하나, 둘씩 다시 짐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나의 경우 한국에서 내가 누리던 것들을 다시 하는데 2년 이상이 걸렸다. 처음에는 차가 없어 쌀을 사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고, 치맥과 함께 월드컵을 보고 싶어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제로가 되었다가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민 초기는 어쩌면 힘들지만 그런 성장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이다. 핸드폰을 개통과 은행 계좌 계설이 캐나다에 온 첫날 내게 주어진 미션이었다면  이번 밴쿠버행 로드트립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캐나다 미션인 것이다. 여기까지 무사히 안전하게 잘 왔으니 조금만 더 집중해서 밴쿠버까지도 무사히 도착하고 무사 귀환하였으면 좋겠구나.



위니펙 한국 마트에서 사 온 새우깡이 중부지방의 지평선을 넘을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외국 나와 살면서 언어를 바꾸는 일보다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입맛을 바꾸는 거다. 오히려 한국음식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깊어진다. 한국에서는 과자를 별로 사 먹어 본 일이 없던 나도 몬트리올에 사는 동안 깡자 돌림의 한국 과자들을 일주일에 두 세 봉지는 먹었다. 캐나다나 호주의 과자들은 내가 먹기엔 너무 짜고 자극적인 데다가 양도 많아서 한 봉지를 열면 한 달 내내 가기도 한다. 한 달 내내 먹어도 한국 과자처럼 누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방부제는 또 얼마나 들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로드트립 할 때는 주전부리를 많이 준비해두는 게 좋다. 졸음을 쫓는 데는 무언가를 씹는 게 제일 좋고, 혹시 날씨나 차량 이상 등으로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에 고립되었을 때 비상식량이 될 수도 있다. 과자나 라면은 차에 항상 싣고 다니는 게 좋고, 물과 음료도 필수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과일도 좋다. 특히 캐나다에서 많이 파는 씨 없는 청포도는 하나씩 먹기도 편하고 수분도 함께 보충 해기 때문에 운전하며 먹기 정말 좋다. 조금 더 오래 식감이 있는 것을 씹고 싶다면 육포도 추천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고립된 적은 없었지만 여러 가지 주전부리 덕에 지루하지 않게 여행을 했다.  



서고 싶을 때 설 수 있는 게 역시 로드트립의 매력이다. 좋은 풍경이 나오면 망설이지 말고 쉬어 가자. 잠이 오거나 피곤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소 한 시간에 한 번은 잠깐이라도 쉬어가자.

장거리 운전을 연이여 의무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감각하게 운전을 하게 되는 타이밍이 오는데, 사고는 그럴 때 일어난다. 어느 순간 그걸 인식했을 때  내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아찔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차를 멈추고 광활한 자연 앞에 잠시 몸을 맡겨보자. 생각이 환기되고 몸이 이완되며 더 멀리 내다볼 수가 있다.  괜히 힘껏 소리를 내어 웃어보거나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광활한 대지 위에 우리는 그냥 한낱 작은 두 점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캐나다의 한가운데 서 있다. 문득 로드트립으로 캐나다를 가르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한참을 또 달리다 보니 길고 길던 평야지대가 끝나고 낮은 동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앨버타주의 시작인가 싶을 때쯤 정말 앨버타주를 알리는 간판이 보였다.. 묵묵히 달려온 지난 며칠간이 마침내 성과를 내는 듯싶어 성취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앨버타주는 캐나다 중서부에 위치한 주로 우리에게는 로키산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주도는 에드먼턴이고 대표도시로는 캘거리가 있다. 에드먼턴은 오일샌드 생산의 중심지로 최근 몇 년 새로운 이민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앨버타주는 천연자원과 관광자원이 많아서 캐나다에서는 부자 주에 속한다. 이는 거주자에게 많은 세금 해택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가격표에 적힌 금액 외에 일정 비율의 세일즈 텍스를 지불하는데(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같은 개념) 이 택스에는 연방 정부에서 부가하는 GST가 있고 각 주정부에서 부가하는 PST가 있다. 각 주정부의 세금 정책에 따라 같은 캐나다라도  PST의 비율이 다른데 예를 들면 내가 사는 퀘벡은 9%가 넘어 GST포함 약 15%로 캐나다 전국에서 제일 비싸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론토의 경우는 GST와 PST를 합쳐 13% 정도다. 앨버타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쿨하게 주정부 세금인 PST를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우리 주는 돈 많으니까 그깟 세금 안 받아도 돼~"라는 식이다. 앨버타 주는 전체가 산맥을 끼고 있어 겨울에는 영하 40도에 이르는 혹독한 겨울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 천해 자연환경의 덕을 보며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앨버타주 간판 앞에서 각자 바이크를 한 대씩 몰고 여행을 하는 멋진 커플을 만났다. 아이들은 이미 커서 독립했을 나이쯤으로 보이는 두 사람. 그 나이에도 우리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여행을 하고 있는 부부를 나도 모르게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도 죽을 때까지 꾸준히 여행하는 그런 커플이 되고 싶다.



앨버타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리쿼 스토어를 발견했다!! 캐나다 대부분의 주는 일반 마트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캐나다는 주에서 주류를 직접 통제하며 각 주마다 주류를 판매하는 리쿼 스토어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온타리오주 같은 경우에는  LCBO가 있고 퀘벡에는 SAQ가 있다. 야외에서 음주를 못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라서 술을 구입하고 마시기까지 항상 해당 주의 주류 관련법을 숙지해두는 것이 좋다. 주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주류를 살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야외 음주가 불가능하다고 알아두는 편이 안전하다. 편의점에 가면 24시간 항상 술을 살 수 있고 값싼 안주와 시원한 파라솔 밑 자리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소 다른 풍경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던 맥주를 여행 시작 5일 만에 살 수 있었다. 이제 조금 더 풍요로운 여행을 할 수 있어  힘이 저절로 솟는다 ㅎㅎ



오늘 찾은 캠핑장은 관리인이 없는 무인 캠핑장이다. 셀프로 체크인 양식을 작성하고 정해진 사용료와 함께 밀봉하여 상자에 넣으면 체크인이 끝이다. 서로  믿고 사는 사회 캐나다, 여러 번 보아도 역시 볼 때마다 인상적이다.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사실 이날 묵은 캠핑장은 분위기가 조금 험했다. 지금까지 머물렀던 캠핑장과 달리 뛰어노는 아이들과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자보다는 캠핑장에 거주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집이 없어 캠핑장에 낡은 캠핑카를 장기로 얻어 거주하거나 근처 공사장 등에서 임시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머무는 캠핑장이다. 그래서 다른 캠핑장과는 달리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자신의 생활공간에 들어온 이방인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이 느껴서 캠핑장이 왠지 싸늘하게 느껴졌다. 커플이 여행할 때는 아무래도 항상 약자인 여자를 먼저 배려해야 한다. 이왕이면 여자가 안정감을 느끼는 안전한 장소에서 숙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나 들것이다. 그래서 환경이 좋지 않은 숙소에 머물게 될 때는 남자 혼자 여행할 때보다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내 마음을 줄리가 읽었는지 먼저 씩씩하게 샤워장에 다녀오더니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너무 마음에 든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제는 어쩌면 나보다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진 줄리.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삼시세끼 캐나다 횡단 편 오늘 저녁 메뉴는 소시지볶음과 사골국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했던 맥주까지 있다.

오랜만에 그렇게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고 돌풍이 불며 굵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날씨운이 너무 좋다 했다.

이동 중에는 여러 번 비를 만났지만 

캠핑장에서 텐트를 친 다음에 만나는 비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녁식사도 식사지만 젖은 텐트를 말리는 일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캠퍼들은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다.

텐트 밖 테이블에 차려 놓았던 음식을 부랴부랴 텐트 안에 집어넣고 배수로까지 판 뒤에야 식사를 마저 할 수 있었다.


역시 이 캠핑장..  터가 안 좋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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