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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로 세계 여행을 하는 이유

캐나다 횡단 6일 차 뜨거운 캘거리 시티의 밤

캐나다 횡단 6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그동안 텐트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는지 돌풍이 불었던 지난밤도 우리는 쾌적하게 숙면을 했다. 아침이 왔더니 언제 날씨가 그랬냐는 듯 쾌청했다. 비바람을 이견 낸 뒤 왠지 얼큰한 게 당겨서 아침메뉴를 감자 찌게로 정했다. 감자는 실온에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 장거리 로드트립에 정말 좋은 식재료이다. 감자 찌게, 카레, 감자전 등 요리는 물론 그냥 찌거나 모닥불에 구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든든한 아침을 먹고 캠핑장을 나섰다. 오늘은 캘거리 시내로 들어가는 날이다.



캘거리는 캐나다 앨버타주의 대표도시다. 철도는 물론  1번 국도까지 지나고 있어 캐나다를 횡단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교통의 요지이다. 겨울 관련 레저스포츠가 유명하여 우리나라 빙상 종목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로키산맥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캘거리 공항을 이용하여 캐네디언 로키의 대표 국립공원인 밴프와 재스퍼로 향한다.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맑았던 날씨가 캘거리에 도착하니 흐려진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도시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오랜만에 도시의 번화가를 마음껏 걷고 싶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쉽다. 무언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오늘 밤은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에서 이곳 캘거리까지 달려오는 6박 중 오늘 포함 2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캠핑을 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캘거리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은 시내에 위치한 피아트 자동차 매장이다. 피아트는 이탈리아를 대표 자동차 브랜드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차는 피아트 500이라는 문이 두 개 달린 작은 해치백 형태의 소형차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한 자동차로 영국에는 미니가 있고 독일에는 비틀이 있다면 이탈리에는 친퀘첸토(500을 이탈리아식으로 친퀘첸토라고 읽는다)가 있다. 한국의 경차보다 약간 큰 이 소형차는 작지만 달리기가 꽤나 재밌고 공간 활용도가 좋은데 디자인까지 이뻐서 예전부터 젊은이들에게 좋은 이동수단이 되어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8개월 전 나는 주행거리가 약 4만 km 된 이 차를 좋은 가격에 중고차 딜러에게 구매했다. 외관은 물론 실내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첫눈에 반해 충동구매를 해버렸다. 수동기어 모델이었지만 그래서 더 저렴했고 운전하는 재미도 좋았다. 특히 수동기어봉이 오토매틱의 그것보다 훨씬 예쁘다. 몬트리올에서부터 여기 캘거리까지 대략 3,600km를 달려와 어느덧 엔진오일 교환 시기가 되었다. 여행 내내 빡빡한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주었으니 보상으로 엔진오일이라도 제때 잘 교환해주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작은 차로 캐나다 횡단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가 작은 차로 횡단을 시작한 건 내 청개구리 같은 성격도 한 몫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작은 차가 좋다.

작은 차가 운전 재미도 훨씬 크고 운전하기도 편하다. 해치백 스타일의 디자인은 크기에 비해 적재공간도 많이 나와 다용도로 사용하기 좋다. 기본적으로 여행은 조금 불편하게 해야 한다는 주의기 때문에 차의 크기가 여행을 결정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차에 이 짐 저 짐 다 때려 넣고 기름을 팡팡 때우면서 하는 여행은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편하게 있으려면 집 거실 소파에 누워 1박 2일 본방 사수하며 대리만족이나 하는 게 제일이고, 진짜 여행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었을 때의 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젊은 여행에는 "편안함"보다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게 이번 여행에 "캠핑"과 더불어 피아트 500이라는 소형차를 선택한 이유이다.


단 한 가지 이번 여행에 차가 작아서 아쉬웠던 점은 히치하이킹하는 배낭여행자들을 뒷좌석에 태워줄 수가 없었다는 거다. 작은 차에 캠핑장비를 비롯해 두 사람분의 모든 살림살이를 싣고 다니다 보니 뒷좌석 의자까지 접어 적재공간을 넓혀야만 했다. 졸지에 2인승 차가 되어버린 거다. 캐나다를 횡단하면서 정말 수많은 히치하이커들을 만났는데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했다. 혹시나 좋은 인연을 만나 더 재밌는 일이 많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은 조금 아쉽다.


캐나다 횡단 여행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승용차로도 횡단 여행이 가능할지 많이 질문을 주는데, 기본적으로 바퀴 달린 차라면 누구나 횡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캐나다는 길이 매우 좋기 때문에 특수한 기능(예를 들면 4륜 구동 같은)이 없는 일반 승용차로도 횡단이 가능하다. 다만 차량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걱정이 된다면 조금 더 틈틈이 자주 쉬어주고 중간중간 상태를 잘 살펴보면 된다. 특히 엔진오일과 냉각수, 타이어와 브레이크등은 출발 전 전문가에게 점검을 한번 받아보자. 운전자와 자동차의 페이스에 맞추어 무리하지 않은 주행을 한다면 어떤 차로도 별 탈 없이 횡단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겨울철에는 윈터 타이어와 배터리 방전 시 필요한 응급키트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피아트는 크라이슬러와 합병하게 되면서 미국 브랜드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방문한 피아트 매장에는 같은 그룹 계열사인 지프 차량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엔진오일을 교환할 동안 지프 차량들을 구경했다. 지금은 작은 소형차를 타고 여행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4륜 구동 차량을 가지고 미대륙을 종단해보고 싶다. 미국을 넘어 멕시코와 브라질을 달리고 우유니 사막을 건너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자락까지 좀 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는 게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ㅎㅎ



정비를 잘 마치고 예약을 한 호텔로 왔다. 주차장에 우연히 같은 피아트 500이 주차되어 있어 바로 옆자리에 내 차를 세웠다. 우리 차는 퀘벡 번호판을, 그리고 옆의 검은 친구는 앨버타 번호판을 달고 있다. 둘 다 이탈리에서 왔지만 서로 다른 캐나다의 양쪽 끝에 살고 있어 웬만해서는 마주칠 일이 없는 고향 친구들이다 ㅎ 같은 차에 달린 두 지역의 번호판을 보고 있으니 내가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들며 감개무량해진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호텔에 들어온 지 5분 만에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우박의 지름이 엄지손톱만 했다. 크기도 크기지만 쏟아지는 양이 엄청나서 계속 감탄을 하면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생에 이렇게 큰 우박은 처음 본다. 우박이 조금 잦아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래도 캘거리 시내를 구경하고 싶어 호텔을 나섰다. 오늘의 날씨가 캘거리 사람이 봐도 특이했는지 방송국에서 나와 생중계를 하고 있다. 캘거리는 대자연에서 가까운만큼 가끔 극단적인 날씨가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는 큰 비가 와서 캘거리 일부 지역이 물에 잠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혹시 밴프에 들어갔다가 고립되거나 하진 않을까 조금 염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자연은 항상 겸손하게 다가가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큰 코를 다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캘거리 다운타운 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하늘이 아직은 우리 편인가 보다. 캘거리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난 6일의 캐나다 횡단 여행을 포함한 지난 3년, 캐나다에 거주하며 북미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니 도시에 들어갈 때 스카이라인만 봐도 도시의 규모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도시의 규모와 상관없이 새로운 도시에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비가 온 뒤 더 깨끗해 보이는 캘거리 도심에도 퇴근시간의 교통체증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도시라 그런지 그것마저 너무 반가웠다. 물론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가도 오도 못하는 상황에 조금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일상을 이렇게 조금 벗어나서 보면 퇴근시간의 교통체증마저 꽤나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차는 교통체증을 피해 시티 중심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캘거리 다운타운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비 덕분에 도시의 채도는 높아지고 덩달아 감성지수도 상승했다. 독특한 구조물이 많은 아기자기한 캘거리 다운타운의 모습이었다. 캐나다나 미국의 도시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나름의 디테일이 있다. 틀린 그림을 찾듯이 오감을 곤두세워 그 미묘한 차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 



비도 피할 겸 영업 종료 시간이 30분 남짓 남은 쇼핑몰에 들어갔다. TD스퀘어라는 캘거리에서 제일 큰 쇼핑몰 중 하나이다. 캐나다의 쇼핑몰들은 대부분 자연친화적이다. 천장에 창을 만들어 자연채광은 물론이고 실내 녹지 공간도 많은 편이다. 그중 캘거리의 TD스퀘어는 꽤 규모가 있는 편이었다.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임대료 비싼 도시 최중심에 있는 쇼핑센터에 자투리 공간이라도 하나 더 파서 매장을 하나 더 넣으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큰 공간을 녹지 공간에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쇼핑하는 부모와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을 모두를 배려하는 복합공간이었다. 




 사실 복지(福祉)라는 게 별거 없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행복한 삶이라는 뜻이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부리는 약간의 사치가 급여 인상이나 명품 가방보다 더 와닿을 때도 있다. 베란다에 테이블과 이국적인 느낌의 의자를 하나 놓았는데 삶의 가치가 두배는 올라가는 것 같은 여유를 느꼈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동물은 똑같은 커피 한잔이라도 분위기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나 만족도는 다르다. 원래 감성과 이성은 한 끗 차이다. 그 가운데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게 삶의 재미 아닐까? 물론 외줄에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은 말자.



녹지공간을 제외하면 쇼핑몰은 30분 만에 둘러보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캐나다에서 산 우리 입장에서 캐나다의 쇼핑몰은 그렇게 사고 싶은 게 많은 공간은 아니다. 캐나다를 횡단하는 이번 여행에서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쇼핑과 맛집 검색에 시간을 많이 소비하지 않았다는 거다. 캐나다 국민성 자체가 트렌드에 민감한 스타일이 아니기때문일거다. 미국, 캐나다의 북미 대표도시들은 선진국답게(?) 패션도 엄청 화려하고 트렌디할 거 같지만 뉴욕 같은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트렌드보다는 제 멋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H&M이나 ZARA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많이 찾지만 반대로 패션 문외한들도 즐겨 찾는 국민 브랜드 같은 느낌이다.  한국 같은 보세의 유니크한 샵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니 우리처럼 북미를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맛집과 쇼핑을 찾는데 여행경비를 할애하는 것보다는, 체험위주의 경험 여행에 비중을 두면 더 좋을 것 같다. 유행이 아닌 자연을 쫒는 삶은 더 평화롭고 여유롭다. 우리는 여행 내내 대부분 캠핑을 했고 직접 음식도 해 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만났을 때는 맥주를 한잔하며 그곳의 분위기를 최대한 느꼈다. 그리고 현지인들과 동화하려 최대한 노력했다.



실내 정원 투어를 간단히 마치고 다시 캘거리 거리로 나왔다. 캘거리 시내에는 트램이 있다. 트램은 길에난 레일 위를 따라 달리는 전차로 일반 자동차와 길을 공유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없는 모습이라 트램이 있는 도시에 가면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캘거리의 트램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커서 마치 찻길을 달리는 기차 같은 느낌이다. 아.. 트램이 원래 찻길을 달리는 기차인 건가?ㅎ 아무튼 토론토에도 트램이 있지만 느낌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트램이 좋다. 토론토 살 때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에는 트램을 타고 시티투어를 나섰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여러 노선의 트럼을 옮겨 타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내려서 구경을 하고 또 다른 트램을 잡아타고 다른 동네로 이동하는 느낌이 좋다. 마치 롯데월드의 자기 부상 열차처럼 트램은 시티 전체가를 놀이동산처럼 느껴지게 한다. 



신, 구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는 캘거리의 다운타운은 대도시임에도 소박했다. 조급하지도 그리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티셔츠가 많았던 상점을 마지막으로 캘거리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우리는 캘거리 투어를 캘거리 타워로 장식했다. 서울에 남산타워가 있다면 캘거리에는 캘거리 타워가 있다. 세계 모든 대도시에는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하나씩 있는 걸 보면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조망하고 싶은 욕망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캘거리에 처음 왔는데 랜드마크 하나 정도는 보고 싶어서 입장료를 투자했다. 다른 도시의 여느 타워와 비슷하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는 록키산맥까지 보인다고 한다. 오늘은 로키 대신 번개가 내려치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지평선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캘거리 타워라서 가능했다.



대도시에 왔다는 건 한식을 맛볼 수 있다는 거다. 캐나다 동부의 도시에는 한식당이 없는 곳도 많이 있지만 동부에는 대부분 한식당이 있다. 계속 한식을 먹으면서 캐나다를 횡단했지만 남이 해주는 음식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현지 레스토랑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할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를 매운 족발 파는 한식당을 찾았다. 역시 비가 오는 날에는 매콤한 게 좋다. 맵네 맵네 하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그런 족발 ㅎㅎ 덕분에 캘거리 하면 캘거리 타워보다 불족발이 생각날 것 같은 뜨거운 밤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기대하던 밴프로 들어간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대되는 곳이다.

멋진 풍경의 로키산맥 한 자락에 텐트를 치는 꿈을 꾸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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