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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서쪽으로 달려야 법니다.

캐나다 로드트립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면 좋은 이유.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에서 서부 밴쿠버까지 자동차로 횡단을 하는 이번 로드트립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캐나다의 크기를 몸소 체험하는 여행이다. 하루 500km씩 운전해도 총 9일이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넉넉한 여행자가 아니라면 하루 평균 800km는 달려야한다. 차량의 상태는 물론 여행자의 컨디션도 항상 신경 써주어야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다. 최대한 해가 떠있는 동안 운전할 계획으로, 해가 뜨면 출발하고 해가 지기 전에 다음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는 것이 나의 보통의 일과다. 오늘 밤을 보낼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면 일상을 지내는 여느 사람들처럼 저녁을 먹고 여가시간을 보낸다. 이런 유의 장거리 로드트립은 다소 지루한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싸움이 아니라 대화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게임의 승패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야 여행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행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 로드트립에서 찍은 사진 중 제일 많은 게 바로 길 사진이다.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길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굽이굽이 코너를 지날 때마다 나타났던 절경들과 그 순간 들었던 음악,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길이 없었다.



몬트리올에서 출발한 첫날 정확히 829.3km를 달렸다. 퀘벡을 벗어난 뒤로 겨우 온타리오주의 3분의 1을 달렸을 뿐이다. 여행 둘째 날은 883.5km를 달렸다. 목적지는 선더베이(Thunder bay)라는 도시로 매니토바주로 넘어가기 전 온타리오주의 마지막 도시다. 세계 제2대 호수인 슈피리어호를 끼고 있는 선더베이는 펄프, 제지 등의 공업과 철도와 항구를 끼고 있어 교통요지로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져 있는 도시다. 이 선더베이를 넘어야만 매니토바에 입성하여 위니펙에 다를 수 있다. 부킹닷컴을 통해 방학중이라 텅 빈 학교 기숙사를 캠핑장 가격에 저렴하게 빌릴 수가 있어 텐트칠 걱정 없이 조금 더 달릴 수 있었다.  창밖이 어둑해져서야 도착한 우리는 문명의 혜택이라도 누리려는 듯 우리는 도미노 피자에 들려 치킨 윙과 치즈 스파게티 주문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타와와 토론토를 그냥 지나쳤기 때문에 엄청 오랜만에 도시를 만난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공용 욕실을 사용해야 하는 대학교 기숙사였지만 지붕이 있고 침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낀 밤이었다. 


이틀 동안 달린 누적 주행 거리 1,712.8km



3일 차에는 702.9km를 달려 위니펙 코 앞까지 도착했다. 드디어 매니토바주에 입성한 것이다. 매니토바주는 서스캐처원주, 앨버타주와 함께 캐나다 중부에 위치한 대표 곡창지대다. 매니토바주의 남부 3분의 1 정도가 평원으로 지평선을 정말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캐나다에 오래 살아도 가볼 기회가 많이 없고 누군가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해서 나 역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는 게 너무 좋다. 캐나다로 이민 와서 토론토에 살았던 처음 3개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조깅을 했는데, 단 한 번도 같은 길로 가본 적이 없다. 집마다 집주인의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어 집과 정원의 모양이나 자동차의 조합 등을 보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훔쳐보는 게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새로운 것을 꾸준히 경험하는 일은 노화를 늦춰준다. 매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품고 있는 진리가 영원하기만을 바라면 결국 타인과 소통 불가한 고집불통 외딴섬이 돼버리고 만다. 매니토바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빨리 훔쳐보고 싶다.



캐나다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총 4시간 30분의 시차가 있다. 위니펙을 향해 열심히 다리던 중 타임존이 변경되었음을 알리는 작은 간판이 스치듯 지나갔다. 너무 작아서 제대로 확인조차 못하고 지나쳤다. 혹시나 하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더니 시간이 바뀌어 있었다. 지나친 간판이 타임존이 바뀐다는 표지판이었던 것이다. 같은 나라인데 시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는 건 작은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서쪽으로 갈수록 시간이 계속 늦어지는데 덕분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로드트립을 하는 사람은 시간을 벌면서 여행할 수 있다. 해를 따라 달리니 매일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아침 7시에 도착해서 12시간을 운전해 목적지에 도착해도 타임존을 한번 지났다면 줄어든 시차 1시간 덕에 도착지는 오후 6시가 되어있다. 저녁을 해먹고도 해가 지지 않아 충분하게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다. 그러나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돌아올 때는 시간을 잃어가면서 온다는 얘기다. 북미대륙을 횡단할 때는 여행 방향과 시차를 고려하는 게  안전하게 여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위니펙을 50km 정도 남겨두고 들어간 캠핑장이 이미 만석이라 조금 당황했지만 한 시간을 벌어둔 상태였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너무 친절한 캠핑장 직원은 근처의 다른 캠핑장을 찾아 예약까지 해주다. 여행 중 만나는 이런 소소한 친절들이 여행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름도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따듯했던 그때 느낌은 오래 간직된다. 위니펙 도심을 10km 남겨놓은 이 캠핑장은 시설이며 분위기며 너무 좋았다. 카라반을 가지고 장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이들은 보통 낮에는 시티 투어를 하고 밤에는 캠핑장으로 퇴근하여 여가시간을 보낸다. 카라반에 시티투어용 승용차를 항상 끌고 다니는데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다. 재밌는 건 시티투어용으로 끌고 다니는 차가 내 차보다 대부분 크다는 것. 그래서 항상 캠핑장에서 우리 텐트와 우리 차가 제일 작았는데 오늘은 옆에 자전거를 탄 여행자가 있다. 여유롭게 차를 한잔 하는 노부부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캠핑장은 왠지 더 포근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어 잠도 더 잘 온다. 내일은 드디어 위니펙에 입성한다! 중부지역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3일 동안 총 이동거리 2,415.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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