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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없는 맛있는 여행..

 삼시세끼 자급자족 캐나다 횡단 여행 생활자

몬트리올에서 밴쿠버까지 4천5백 킬로미터의 로드트립.


하루 800km를 넘게 달리고도 온타리오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의 캠핑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첫날밤. 숙소도 정하지 않고 떠난 여행에 긴장도 되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캠핑장을 찾았고 편안한 잠자리를 가졌다. 



다시 길로 나서기 전 여행길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메뉴는 사골 누룽지탕으로 정했다. 매우 거창해 보이지만 몬트리올 집에서 미리 고아 얼려 온 사골국에 인스턴트 누룽지를 넣는 게 레시피의 전부다. 파와 참기름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사골 누룽지탕은 조리에 걸리는 시간이 라면과 비슷하지만 영양과 맛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한, 지금까지도 캠핑 갔을 때 아침으로 제일 즐겨 먹는 일종의 홈메이드 인스턴트 메뉴라고나 할까? 


지금은 한류를 탄 한국 식품 업체들의 선전으로 외국 코스트코에서도 비비고 같은 한국 인스턴트 제품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외국 생활하는 사람에게 사골국물은 꽤나 사치품이었다. 내가 거주하는 몬트리올에는 캐나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정육점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오면 어떻게 알고 사골용 뼈를 서비스로 나누어 준다. 현지인들은 뼈를 요리에 잘 이용하지 않으니 한국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센스 있는 사장님의 좋은 전략 이리라. 한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그 정육점은 몬트리올에 이민을 온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명소이다. 비앙 달(Viandal Charcuterie)이라는 이 정육점은 한국식으로 도축한 삼겹살, 차돌박이 등을 팔아 한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사장님은 한국말도 약간 할 줄 알아 갈 때마다 큰 웃음을 준다. 예를 들어 영어로 삼겹살 달라고 주문을 하면 "삼겹살 두꺼운 거? 얇은 거?"라고 한국말로 질문한다. 장조림 할 거라고 얘기하면 "홍두깨살"이라고 한국말로 알려 준다. 그렇게 재미있는 사장님과 즐거운 대화 후 기분 좋게 얻어 온 사골용 뼈로 하루 종일 물을 다시 채워가며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은 끓여야 바로 맛 좋은 사골국이 되는 것이다. 시장에 가서 단돈 5천 원만 내면 나오던 순댓국과 설렁탕이 새삼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정성과 시간을 들여 사골 국물을 우려내고 먹기 좋게 한 끼분씩 포장하여 냉동실에 채워두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것도 새삼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게 바로 외국생활이다. 덕분에 매 순간 삶에 어떤 것들이 소중한지 상기하는 기회가 된다. 


이번 여행에도 꽝꽝 얼린 사골국을 여러 통 챙겨 가져왔다. 정말 캐나다에 살았었기에 가능한 스타일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아침으로 밥과 국을 먹는 것을 보고 너무 헤비 하다며 놀라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아침부터 퍽퍽한 빵을 먹는 게 더 신기할 뿐이다. 아침엔 따뜻한 국물과 찰진 밥이 더 생각나는 걸 보면, 역시 나는 토종 한국인이 맞다. 특히  밤새 바닥에서 올라온 냉기를 이겨내며 야외취침을 한 경우라면 더더욱 말이다. 비앙 달에서 구입한 고기와 얻어온 뼈로 우려낸 사골국물은 캐나다 횡단 로드트립 초반 우리의 든든하고 일용한 양식이 되어주었다. 캐나다의 중부지방까지 이 사골국물의 힘으로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과 맛있는 음식을 떼려야 떼놓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바로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국토 면적이 두 번째로 큰 나라로 국민 총소득 6위에 달하는 G7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러나 건국된 지 이제 150년이 조금 넘은 나라로 그 역사 역시 우리나라에 비하면 매우 짧다. 이 땅에 원래 거주하던 원주민의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함께 들어와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해져 온 각 지방의 토종음식이 거의 없다. 예를 들면 그 음식 문화가 신도시에 새로 생긴 백화점의 푸드코트 같다.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국토의 크기는 작지만 서울에서 몇 시간만 벗어나도 닭갈비, 비빔밥, 콩 날물 국밥, 돼지국밥, 흑돼지 같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있지만, 캐나다는 그런 음식들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내가 사는 지역 퀘벡에는 감자튀김 위에 치즈와 그래비 소스를 뿌린 푸틴이라던가, 우리나라의 호떡과 찹쌀도넛 중간쯤 되는 비버 테일 같은 유명 음식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몇 시간씩 비행기 타고 퀘벡까지 날아온 손님들에게 캐나다 대표 요리랍시고 이런 음식을 대접한다 생각하면 왠지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여행할 때 그 지역의 대표음식이나 술을 맛보건 나 역시 정말 좋아하는 여행의 묘이인데, 캐나다는 그런 재미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캐나다를 횡단하면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뭐였냐 나에게 묻는다면 그건 바로 이름 먹을 주유소에서 먹었던 햄버거였다. 캐나다의 중부지역 어딘가를 지날 때 브랜드조차 낯선 어떤 지역 주유소에 들어섰다. 주유소 내부 한쪽 작은 부스에 수제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팔았는데, 그 버거가 캐나다 횡단 중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내가 먹은 제일 맛있는 인생 햄버거였다. 아쉬운 건 다시 찾아가래도 그 주유소를 찾아갈 수 없다는 거다. 캐나다에 살아본 경험으로 이런 상황을 조금 예상을 했고, 그러다 보니 이번 캐나다 횡단 여행은 외식보다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을 택했다. 덕분에 적은 돈으로 더 알차게 먹을 수 있었고, 도착한 도시에서 식당이나 마트를 찾아다니는 시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맛집이라는 요소가 하나 사라진 것은 분명히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했고 덕분에 캐나다의 자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는 캠핑장은 물론 바비큐가 가능한 공원과 고속도로 쉼터가 많기 때문에 간단한 조리도구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아이스박스만 있다면 이동 중 직접 요리가 가능하니 캐나다 장기 로드트립을 한다면 참고하는 것이 좋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도 고즈넉한 캐나다의 시골 풍경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도시에서 10km만 나가도 "우와 이런데가 있었어?" 하며 감탄하지만, 그 풍경이 수백 킬로미터를 반복되기도 한다. 무책임한 내비게이션은 "전방 900km 직진입니다."라는 외마디 말을 남긴 채 하루 종일 업무를 보지 않을 때도 있다. 캐나다 로드트립의 묘미는 이런 멋진 길을 달리다가 멋진 풍경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좋은 풍경 앞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좋은 풍경을 보면 라면을 끓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건 아마도 이 캐나다 로드트립 때문인 것 같다.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꿀맛이다. 



가끔은 조금 거창하게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 위니펙을 코 앞에 두고 먹는 오늘 점심은 메뉴는 차돌박이다. 역시 몬트리올 최고의 정육점 '비앙 달'에서 사 온 차돌박이다. 매일매일 아이스박스에 새 얼음을 채워놓으며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렇게 고이고이 모셔 캐나다의 중부지방까지 가져왔다 ㅎㅎ 여기는 이그나스(Ignace)라는 인구 12,000명의 온타리오 작은 도시다. 둘째 날 밤 묵었던 선더베이부터 오늘의 목적 이인 위니펙까지 3분의 1 정도 온 것 같다. 인포메이션 센터 옆 작은 공원에 바비큐 시설이 되어 있길래 직원에게 물어보니 바비큐나 간단한 요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여행 중 무언가 확실하지 않으면 항상 물어보는 게 좋다. 세계 어디를 가던 그곳의 규칙을 잘 따르고 존중해주어야 어글리 아시안 소리를 듣는 것을 피하고, 나 다음 여행할 누군가가 인종차별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니 확실하지 않으면 항상 질문하고 확인하여 현지인들에게 피해 주는 일을 피하자.  바비큐 가능이라는 질문에 "YES"라는 확답을 들은 우리는 과감하게 불판과 가스버너를 꺼내 들었다. 보통 캐네디언들은 바비큐라고 해봤자 소시지나 햄버거 패티 정도 구워 먹는게 보통이다. 한국식 바비큐는 현지인들이 볼 때 다소 거창해 보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바비큐를 할 때는 항상 뒷정리를 깨끗이 하고 특히 설거지를 할 때 배수구에 음식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주의하자. 설거지가 끝난 개수대를 마른 수건으로 깨끗이 닦는 것까지가 사용자의 의무이자 매너이다.  한국식 바비큐와 쌈은 외국인 친구들한테 언제나 인기가 좋다. 캠핑지에서 외국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한국씩 쌈 싸 먹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도 친구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불판에 바로 고기를 구워 취향대로 쌈을 싸 먹는 방식을 외국인들은 참 재미있어한다. 우리는 1차로  차박박이 구웠고 2차로 사골 국물에 공깃밥까지 추가하여 배를 든든히 채운 뒤에야 위니펙을 향해 다시 달렸다. 장기 여행은 역시 밥심이다.



덕분에 오늘 밤 베이스캠프가 될 캠핑장까지 잘 도착했다. 위니펙을 10km 정도 남기고 찾아 들어간 캠핑장의 분위기가 유독 가족적으로 보여 왠지 포근해 보인다. 오늘 저녁으로는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의 중간 정도 되는 요리를 하기로 정했다. 충청도에서는 이 요리를 짜글이라고 부른다. 돼지고기가 저렴하고 질이 좋은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해 먹는 향토음식인데, 푸짐한 양에 비해 싸고 맛있어 대학교 때  후배들과 자주 갔던 단골집이 있었다. 오늘은 캐나다의 위니펙에서 캐나다 돼지고기로 짜글이를 만들어먹을 예정이다. 익숙하게 텐트를 치고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맥주를 한 캔 딴다. 지는 해를 안주 삼아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오늘도 사고 없이 무사하게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루 수고했다고 스스로 칭찬해 본다. 이어 스물다섯 살까지 외국 한번 못가보고 한국 음악만 들으며 자랐던 내가 집도 절도 북아메리카를 떠돌아다니다 위니펙에서 짜글이를 해 먹고 있는 사연에 대해 잠시 한번 생각해본다. 지고 있는 저 해는 이제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도착하겠지? 나는 누구? 또 여긴 어디?ㅎㅎ 노을을 조명 삼아 푸짐한 저녁을 먹고 모닥불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도로 위의 여행생활자의 매우 평범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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