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첫 10시간 비행, 상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것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어떤 확신을 갖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실 학교다닐 때보다 졸업 배운 것들이 더 많다. 인생에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2012년의 호주 여행이 그랬다. 처음으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영어를 쓰는 나라로 날아간 것이다. 그때의 내 나이는 서른으로 인생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외국 생활을 새로 시작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라고 당시 생각했다).
실제로 여행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은 역시 비행기 타기 바로 전이다. SNS에서 봤던 여행지의 풍경 속을 거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인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순간부터 상상 속 여행은 현실로 다가온다. 사진으로 보던 랜드마크를 실물로 보는 순간 설렘은 바로 다른 감정들로 치환된다. 감동하고 기뻐하며 때론 실망하기도 한다. 어쩌면 가끔은 현실보다 상상이 즐겁기도 하다. 상상이 얼마나 즐거운 현실이 될지는 오롯이 여행자의 몫이다.
오랜만에 찾은 인천공항은 역시나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릴 적 '외국'과 '미국'이 동의어인 줄 알았던 내가 첫 영어권 국가로의 여행이 미국도 유럽도 아닌 호주라는 게 조금 갑작스럽고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어떤 일이 되려 할 때는 그 개연성을 파악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진행되곤 한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미국에 30년 동안 살며 합기도를 전파하신 아버지 베프의 호주 출장에 우리 가족이 갑작스레 동행하게 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잘 몰랐다. 이 여행이 나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바꾸어 놓을지는.
그저 나는 만들어 놓고 쓰지 못해 아깝다고 생각했던 10년짜리 복수 여권 한 페이지를 더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한항공 여객기는 저녁 8시에 한국을 출발하여 약 10시간 뒤 이른 아침 호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야간비행이니까, 맥주 한잔 마신 다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호주에 도착해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비행기 안에서 숙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세는 불편한데 어찌나 시끄럽고 춥던지, 맥주는 괜히 마셔서 머리만 아팠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호주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 안에서 본 일출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호주 공항의 입국 심사는 매우 엄격했다. 음식류, 특히 씨가 들어 있는 과일의 반입을 까다롭게 검사했다. 성매매를 목적으로 호주에 입국한 한국 여성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어 여성들에 대해서는 이중 삼중으로 검색을 했다. '상상'과는 사뭇 달랐던 첫 장거리 '현실' 비행을 마치고, 나는 처음으로 호주 땅을 밟았다. 지금부터는 상상 속의 호주가 현실과는 어떻게 다른지 직접 확인해 볼 차례이다.
공항을 빠져나와 호주 첫인상에 대한 감상을 미쳐 정리하기도 전에 우리 일행은 대기하고 있던 미니밴 안으로 구겨지듯 빨려 들어갔다. 앞으로 총 8일 동안 이곳에 머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