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한국을 알려라!
나는 현대 자동차나 삼성전자의 주식 한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뉴욕 여행 때 타임스퀘어 대형 스크린에 한국 회사의 광고가 걸려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외국인들이 현대를 횬다이라고 발음하면 굳이 "현대'라고 발음 교정을 해주며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외국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 강남스타일 없이 진행되는 현지인들의 파티를 본 적이 없고 외국 친구들과 소통할 때 BTS나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런 한국 상품과 문화의 인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외국생활을 하는 교민들에게 큰 의지와 힘이 된다. 미국 출입국 심사를 할 때도 앞에 서있는 남미의 어느 외국인에게는 한 달 수입까지 물어보며 까탈스럽게 심사를 하지만 내 여권을 보고는 궁금한 한국 문화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한국 살 때는 "한민족"이라는 단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외국 나와 오래 살다 보니 그 말인즉슨 외국 애들이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할 동안 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에 둘러싸여 있어 외국인과 접촉이 늦었고 그만큼 해외로의 이민 역사도 짧다.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외국인들과 만났을 때 처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그럴 때 상대측이 BTS나 강남 스타일 얘기 등을 먼저 꺼내 주면 우리로서는 다음 이야기가 너무 수월할 수밖에 없다. 재외공관에 근무했던 5년 동안 BTS와 강남 스타일이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 외교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다. 주몬트리올 총영사관에서 문화 공공외교 업무를 담당하면서 한국 문화를 현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많은 행사를 했다.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었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배우며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영사관 취직 후 내게 주어진 첫 번째 문화 공공외교 미션은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한인 미술작가를 현지에 알리는 미술전시였다. 당시 캐나다에서 미술전공을 하던 한국 유학생이 졸업 후 진로가 막막하다며 보내온 이메일 한통에서 시작된 이 아이디어는 캐나다에서 활동 중인 한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장소를 찾는 것이 제일 관건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말단이었지만 유일한 미술 전공자였고 대학원까지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번 행사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 진행하는 한국문화 관련 행사의 문제는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을 현지에서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교민 수가 북미의 다른 지역보다 적기 때문에 그만큼 교민들 직업의 다양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엔 퀘벡 외의 캐나다 지역에서도 작가들을 불러들여야 했는데,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고 작품의 운송비용도 비쌌다. 두 번째는 공간 문제였다. 기획 초부터 염두했던 공간이 있었는데 ICAO(국제 민간항공기구. 비행의 안전 확보, 항공로나 공항 및 항공시설 발달의 촉진, 부당경쟁에 의한 경제적 손실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한 유엔 전문기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는 ICAO의 상임 이사국으로 해당 건물에 대표부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고 우리 총영사관은 ICAO 대표부 업무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승인이 날 줄 알았는데, 안전상의 문제로 거절 통보를 받았다.
그때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이미 작가 선발도 마쳤고, 예산도 확보해 놓은 상황이라 어떻게든 전시를 진행해야 했다. 몬트리올 지역에 있는 갤러리들을 구글 지도에서 일일 찾아 직접 방문했고 비어있는 상가건물과 에어비앤비까지 뒤져가며 전시가 가능한 모든 장소들을 검색했다.(덕분에 몬트리올의 이곳저곳을 많이도 가 보았다.) 정말 어렵게 몬트리올 한가운데 위치한 임대 가능 장소를 찾았는데 개인 건물이다 보니 임대료가 비싸고 조건도 까다로웠다. 이곳마저 엎어지면 올해 안에 행사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아 깐깐한 건물주의 조건을 최대한 맞추느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임대료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다 보니 다른 곳에 쓸 돈이 부족했다. 결국 작품 픽업도, 벽에 페인트칠도, 팸플릿 제작과 홍보 등도 모두 직접 해야 했다. 힘은 들었지만 직접 발로 뛰며 행사 진행의 전반적인 과정을 배울 수 있었고 큰 보람도 느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들었던 첫 행사의 성공으로 우리 영사관은 탄력을 받아 더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 갔다. 캐나다 퀘벡 지역에 한국 문화에 대한 확실한 수요층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도깨비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퀘벡은 북미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으로 그중 몬트리올은 캐나다 제2의 도시이다. 하지만 캐나다 타 지역에 비해 한국 교민 수가 적어 현지인들이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한인 작가 미술 전시를 열었던 같은 해 11월, 우리는 KOTRA와 협력하여 한국 화장품 박람회를 열었고, 그다음 해에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을 초청하여 현지인들에게 한국 사찰음식을 알리는 행사도 개최하였다. 특히 이 사찰음식 행사는 몬트리올 관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지 올드 몬트리올의 랜드마크 장소에서 성대하게 열렸으며 행사장에 국산차량을 함께 전시하고 현지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하는 등 내가 그동안 내가 외국 호텔에서 근무하며 배우고 경험한 것들과 인맥까지 최대한 활용하여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하면서 내가 진행한 행사들이 현지 교민들이 운영하는 사업과 연계될 수 없어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한계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한인 미술전 당시 몬트리올 3개 레스토랑의 협조로 방문객들에게 제공했던 한국식 핑거푸드와 소주로 만든 칵테일 반응이 상당히 좋았었던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다음 행사로는 현지 한식당들이 참가하는 한식 길거리 음식 축제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펜데믹이 왔고 그 후로 2년 동안 우리는 어떤 대면 행사도 진행할 수 없었다.
외국에 10년 동안 거주하면서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유행의 뚜렷한 흐름과 변화, 치열한 경쟁 등으로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졌지만, 덕분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들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결과물들의 이면에는 수많은 개인의 희생이 있고 그 증거로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점점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이제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국가와 개인 모두 노력할 때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작년을 끝으로 5년 동안 근무했던 주몬트리올 영사관을 퇴사하고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재능을 살려 최근 한국 문화를 몬트리올에 알리고 몬트리올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인스타그램 계정 @mtlktown을 론칭했다. 서로 다르면서 비슷한 한국과 퀘벡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며 좋은 라이프 스타일을 많이 소개하고 싶다.
https://www.instagram.com/mtl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