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영사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사진학교를 다녔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캐나다로 다시 돌아온 지 약 9개월쯤 되었을 때 다니던 호텔을 관뒀다. 이민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던 차였지만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턴 생활부터 그곳에서 시작했으니 근무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하지만 호주 워홀 동안 힐튼 호텔의 좋은 환경에서 업무 경험이 있어서 인지 규모가 더 작은 현재 회사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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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경영하는 회사다 보니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가족들보다 위로 올라갈 수 없었고, 그 사이에 있는 매니저 역시 장기간 집권을 하고 있었다. 원래 브랜드 호텔의 경우 짧게는 2~3년 길어도 5년에 한 번씩은 이직이나 지점을 옮기면서 근무하는 일이 흔하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배울 건 다 배웠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퇴사하고 우선은 불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다른 현지인처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원래 임금의 60% 정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껴 쓰면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첫째는 다른 호텔로 이직을 하여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직종에 도전해보는 것이었다. 현지 문화에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선 우선 불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부 지원 불어 학교를 등록했다. 캐나다의 복지가 상당히 좋은 게 영주권을 취득한 이민자들이 무료로 불어 수업을 듣고 추가로 한 달에 약 5~600불 정도의 정부 지원금도 나온다. 이민자들의 언어 실력 향상이 곧 퀘벡 사회에 빨리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실업 급여와의 중복 수령은 불가하다.
불어 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colleges에서 운영하는 상업사진 AEC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학 정도 되겠지만 퀘벡의 경우 교육 시스템이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도 많이 달라 현지 언어 그대로 사용하는 게 좋을 듯하다. 포트폴리오 제출과 면접을 거쳐 그렇게 가고 싶었던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사진은 20대 때부터 시작한 나의 첫 취미였다. 사진학과 대학원 진학을 하고 싶었으나 학비가 비싸 포기한 적이 있었다. 사진 관련 일을 한적도 있었지만 항상 학위가 없어 콤플렉스가 있었다. 캐나다에선 학비가 무료에 정부 지원 생활비도 받을 수 있어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야간 2년 과정이었다. 이민 관련 학교들은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등록했지만, 이번에는 학교 모집 요강을 보고 혼자 도전해 보았다. 공식 웹사이트에 지원양식 작성 후 포트폴리오를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필요한 원본 서류를 학교 사무실에 직접 제출하면 응시가 완료된다. 면접은 생각보다 떨렸지만 그래도 가뿐히 합격을 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몬트리올 대한민국 영사관에 현지 행정직원 모집 공고가 났다. 업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상당히 괜찮았다. 사진 학교는 오후 여섯 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리석지만)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영사관에서 근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영사관에서 하는 업무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한국의 동사무소처럼 민원 업무만 보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영사관 면접을 당일, 면접장에 걸린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왠지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면접 후 당일 바로 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그렇게 학교와 영사관 근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영사관에 실제로 근무해보니 생각보다 업무가 다양했다. 교민들을 위한 민원업무와 행사는 물론이고 한국문화를 현지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이벤트와 현지 정부단체와의 교류 업무도 많아 직원 한 명이 커버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상당히 넓고 야근도 잦았다. 첫 학기, 학교와 일을 병행하느라 정말 힘이 들었다.
학교 역시 생각보다 그 과정이 어려웠는데, 학기 초반에 배우는 사진 이론이야 이미 아는 것들이라 따라갈만했지만 수업방식이 문제였다. 토론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수업 중 자꾸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는 토론들이 이어졌다. 나는 회사를 마치고 학교에 간 상태라 이미 지쳐있고 따로 예습, 복습을 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귀로 수업을 듣고 눈으로 화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체력적으로 벅찼다. 그동안 다닌 직업학교에선 그래도 내 영어실력이 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100% 현지 친구들이랑 함께 수업을 들으니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다. 회사생활도 학교생활도 생각보다 힘들지만 둘 다 재밌고 성취감이 있어 어느 하나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졸업장만 따자는 생각으로 간신히 출석일수만 채우다가 결국 세 번째 학기 때 학교를 포기 하고 말았다.
직장과 학교, 둘 중 학교를 포기한 이유는 처음에 영사관의 업무가 매우 즐거웠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업무들이 영사관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경험하기 힘든 일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 공공외교 행사는 나의 경험과 재능을 발휘하며 보람까지 느낄 수 있는 업무였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을 현지인들에게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한국 화장품 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사찰음식 축제도 개최했다. 미대에서 배운 디자인 감각과 호텔에서 여러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경험이 합쳐져 점점 더 규모 있고 흥미로운 행사를 만들어 냈다. 팸플릿 제작과 행사 사진 촬영까지 직접 해야 했으니 학교에서 배운 것도 써먹을 수 있었고 행사당 한 번에 100명이 넘는 인원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니 기획자로서의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학교 과정은 무언가의 기초를 다지는데 분명히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은 다양한 실무 경험이다. 이민 생활도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책이나 유튜브로 이민을 배워도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이다. 물론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그런 것들을 헤쳐나가며 또 한 번 성장하기 마련이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모두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고,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사는 인생은 행복하지 못하다. 장기적인 계획과 그 안에 단기적인 계획을 함께 세워 꾸준히 자기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 역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