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내 집 마련과 드림카 구매
내가 지금까지 연재했던 지난 18편의 내용보다 사실 독자들이 더 궁금한 것은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외국 가서 살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경험해본 결과 사업과 이민은 자본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종잣돈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간과 몸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항상 하고 싶은 것에 비해 예산이 부족했던 우리는 시간과 우리의 더 발품을 팔아야 했다.
2013년 이민 당시 우리는 이민 회사에 캐나다 달러로 총 $25,000의 비용을 지불했다. 10년 전이고 당시에는 환율이 약 1,100원 정도 하던 시절로 옵션 하나도 없는 소나타 한 대 구매할 정도의 돈이었다. 그리고 그 금액에는 학비, 수속 비용. 현지 정착 서비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 입학부터 졸업과 영주권 취득까지 모든 과정에 대해서 추가 비용을 낼 필요 없이 패키지(?)로 결제를 했다.(단 불어 관련 이민법이 변경되었을 때 예상에 없던 지출인 불어 수업비는 나, 현지 유학원, 한국 유학원이 3 등분하여 지불하기로 하였으나 현지 유학원은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
https://brunch.co.kr/@parttimeartist/80
이민 수속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나니 수중에 딱 천칠백만 원이 남았다. 3백만 원은 환전하여 현금으로 캐나다행 비행기 탈 때 가져가고 1천만 원은 나의 시티은행 계좌에 그리고 400만 원은 줄리의 시티은행 계좌에 넣어 현지에서도 출금할 수 있도록 했다. 나름 안전하게 한다고 각각의 계좌에 나눠 놓았던 건데 당시 여러 가지 준비로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줄리 계좌에 넣어놨던 400만 원은 둘 다 까맣게 잊고 캐나다 생활 8년이 지난 한국 방문 때 타 은행 계좌 조회하기 기능을 써보다 발견했다. 결론적으로 줄리와 나는 둘이서 1천3백만 원을 가지고 캐나다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토론토에서 머물었던 숙소 렌트비가 방 하나만 빌리는데 월 $800이었다. 집에서 잠자고 숨만 쉬고 살아도 1년 생활비가 안 되는 액수의 돈을 가지고 우린 캐나다 이민을 떠난 것이다. 학교 과정이 1년 이상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긍정적이어도 너무나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줄리가 바로 취직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캐나다 생활은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학업기간 + 1~2년 정도의 생활비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 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중에 후폭풍이 온다.
당시 영주권에 필요한 학위를 따고 영어와 불어 점수를 취득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캐나다에 도착해서부터 1년 치 나의 스케줄이 대략 정해져 있었다. 반면에 줄리는 출국 전 특별한 계획이 없기 때문에 캐나다 이민을 결정할 때쯤 나는 네일아트 기술을 배워보면 어떨까 권유했다. 줄리는 평소에 네일아트 받는걸 엄청 좋아했다. 대학생 때부터 몇십만 원짜리 회원권을 네일숍에 끊어놓고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VIP 고객인 데다 셀프 네일도 즐겨했다. 둘 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던 미술대학 CC시절부터 줄리는 작은 캔버스에 제일 작은 1호 붓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네일아트라는 직업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처음에 내가 그 아이디어를 냈을 때 3개월 만에 내가 그걸 어떻게 배우냐고 역정을 냈는데, 사실 그때 나는 이미 인터넷에서 모든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보통 네일아트 국가고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하루 4시간 수업을 6개월 이상 받아야 하는데, 강남에 가면 하루에 두타임, 총 8시간씩 3개월 만에 취득을 도와주는 곳이 있었다. 우선 학원 구경이나 하자고 갔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네일 도구가 들어있는 이층짜리 툴박스를 줄리 앞에 펼치자 줄리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 그날 이후 네일아트 학원에 등록한 줄리는 하루 8시간 수업으로도 성이 안찼는지 같은 반 동기들과 선생님을 꼬드겨 학원 수업 외에 아트 특강을 따로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여유 있게 네일아트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줄리는 필리핀 어학연수 단 3개월의 영어실력을 가지고도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바로 취업에 성공했고, 10년이 지난 현재 나는 줄리가 캐나다 몬트리올 최고의 네일 아티스트라고 감히 말한다. 줄리의 이런 꾸준함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의 이민 생활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네일 아티스트 줄리의 포트폴리오는 아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nailyjully/
그렇게 2019년, 우리는 이민 6년 만에 캐나다에 첫 집을 샀고,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나의 드림카도 구매하였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다른 대도시 토론토나 밴쿠버에 비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타 도시의 경우 중국 투자자들이 집을 많이 구매하면서 집값에 거품이 많이 끼었지만 퀘벡지역은 외부 자본으로부터 집값을 안정적으로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실제로 꽤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캐나다는 주택에 사는 것을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몬트리올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아파트 바람이 불면서 신축 건물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이런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면 조금 더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 한국처럼 청약제도 같은 건 없지만 수요와 공급이 비슷해 경쟁률이 그렇게까지 치열하지는 않다. 어느 정도 발품을 팔고 인내심을 가지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좋은 집을 싸게 구매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신축 콘도를 구매하였는데,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약 천오백만 원 정도를 미리 내고 완공 후 입주할 때 약 8천만 원 정도(개인의 신용도와 건축사 약관에 따라 따르지만 대략 건물 값의 20% 정도를 내야 한다)를 내면 나머지는 모기지로 총 25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다.
자동차도 최대 8년까지 할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된 수입만 있다면 차를 사는 것이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 우스개 소리로 캐나다 사람들은 취직하면 차와 집을 사고, 그 모기지를 다 갚을 때쯤에 또 빛을 내어 요트나 캠핑카를 산다고 이야기한다. 일종의 조삼모사이지만 이런 시스템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 양쪽 모두 안정적이라 좋다.
대부분의 캐나다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되기보다는 적당한 강도의 적당한 시간만큼 일해 적당히 벌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많이 벌수록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 늘어나는 이유도 있지만, 돈만큼이나 자신의 여가 시간, 취미생활, 가족과 함께 또는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버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지금을 즐기는데 열정을 다한다. 느리긴 해도 의료서비스가 무료이고 (미성년자는 불론이고 성인들의 재교육을 포함한) 교육과 실업급여, 연급제도 등 사회복지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덜하다. 이런 구조가 자연스럽게 벌어들인 돈을 은행에 예금으로 보관하기보다 적당하게 소비케 하니 사회 전반적으로 돈이 잘 돌기 마련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벌려면 정신 혹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더 강도 있는 노동을 해야 하는데,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면 업무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심신이 피로해져 결국엔 라이프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망가지게 된다. 외국에 10년 정도 살면서 나는 잘 버는 법보다 잘 쓰는 법을 배운 듯하다. 돈이 많으면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데 시간을 너무 쓴 나머지 기회를 잡을 시간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나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면 적은 돈으로 더 행복한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