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에세이를 읽는 날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가져온 이런저런 책들을 책상 한켠에 잔뜩 쌓아두어도 정작 손이 가는 건 수필집, 에세이, 산문집들이다. 실재하는 사람의 생각과 일상을 훔쳐보면서 내 생각을 다듬고 싶은가 보다. 여전히 내 마음과 대화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가 보다.
소설가를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먼저 만나는 일이 조금 이상한가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유명한 소설가인 김영하 작가의 책들 중에서도 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고 산문집만 읽었다. 조만간 김금희 작가의 소설도, 김영하 작가의 소설도 꼭 읽어볼 예정이다.
그 조만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산문집을 통해 그분들의 시선이나 마음의 결을 한번 따라가 보았으니 소설을 읽을 때 보다 마음이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써놓고 보니 이 마음 역시 너무 수필을 대하는 자세 같기도 하다.
아무튼 김금희 작가님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을 무렵, 얼마 전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봤던 문장 하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느 책에서 롤랑 바르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타인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구조 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이 아직도 나의 안과 나의 가까운 밖에만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새삼 직면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내 안에 쌓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글쓰기라는 수단을 찾게 된 것이 3년 전이었다. 그리고 수단의 목적에 알맞게 대체로 내 이야기를 참 많이 썼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살짝 멀리 나가서 내 주변의 사람들과 일어났던 나의 이야기. 그것들은 나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고, 내가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잘 쓸 수 있다고 믿는 것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비교적 나에게 안전한 글이었고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 정도만 발생시키는 글이었다.
그동안은 욕심내지 않는 것, 그래서 내가 씹을 수 있는 만큼만 베어 무는 것이 그리 나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김금희 작가님의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고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충분히 앞으로 걸어 나올 수 있는데, 적당히 안전하고 적당히 불편한 글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식지 않은 이슈에 대해 글을 남기는 일이 아직 내게는 무척 두렵고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도 슬슬 안전하기만 한 글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글에서 조금씩 밖으로 걸어 나오는 글을 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아주 급작스럽게는 말고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