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사내 네 명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잘못을 했으니 감옥엘 가야 한단다.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아니 이건 목소리로 낚는 게 아니라 실물로 찾아왔으니 납치 시도인가.
순식간에 얼어버린 머릿속을 최대한 말랑하게 녹여 굴려보려는데 그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문가처럼 익숙하게 나의 사지를 한 짝씩 붙잡아 들어 올리고는 헹가래를 할 것처럼 짊어졌다.
사내들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척 척 척 척 걸어갈 때 나는 우리 집 현관문이 잘 닫혔는지, 문이 잠겼다고 삐리릭 소리가 제대로 났는지 확인할 수 없어 불안했다.
놔라, 내 발로 걷겠다! 하고 자리에 우뚝 선 다음 우리 집 앞으로 달려가 문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 문고리를 잡아 내려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그들은 건물 입구에 미리 세워둔 이동식 침대에 나를 풀썩 눕혔다. 재빠르게 가슴 위로 하나, 허벅지 위로 하나 벨트를 두르더니 찰칵, 찰칵 버클을 채웠다.
한 사내가 힘을 주어 침대 머리맡을 밀었고, 나는 우둘투둘한 바닥과 차량과 연결된 경사로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짐짝처럼 차에 실렸다.
경찰차라면 흰색 봉고차에, 납치를 당하는 중이라면 검은색 봉고차에 실릴 텐데, 내가 향하는 건 찐 노란색 봉고차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내 시신경이 어떻게 되었나 생각했지만 똑똑히 봤다. 봄날 개나리 같은, 채도와 명도 모두 쨍하게 높은 노란색의 길쭉한 차를.
이내 차문이 닫히는 소리와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박된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여기저기 굴리며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수밖에.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뭉텅뭉텅 산발적으로 상영되었다.
그때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새파랗게 질려 있는 나를 한번 흘낏 쳐다보고는 내 근처에 앉아있던 사내에게 귓속말을 했다. 무슨 말인가 들은 사내는 건조한 표정으로 낡은 종이 상자에서 두툼한 고무줄을 하나 꺼내 공중에 탈탈 털더니 내 오른팔 손목에 둘렀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영화에서 수도 없이 봤다.
이럴 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데.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심장은 쿵쿵 뛰었다. 머리털이 쭈뼛 솟고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유능한 나의 편도체야, 지금 너는 불안을 제대로 감지하고 있구나. 투쟁과 회피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 줄 거니?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감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투쟁도 회피도 아닌 얼어붙기를 선택한 편도체 때문에, 나는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두 눈에 가득 머금은 채 바들바들 떨면서 주삿바늘이 내 손등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이렇게 내 삶이 끝날 줄 알았다면 더 막 살 걸 그랬어. 연애도 한 번 더 하고, 모아둔 돈으로 캐나다도, 스페인도, 베트남도 한 번 더 다녀올걸.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몇 푼 없는 돈이지만 아끼다가 이마저도 다 똥이 되어버렸지 뭐야.
이 순간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머릿속을 흘러 다닌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실소가 흘렀다. 깜빡, 깜빡, 깜빡. 눈을 세 번 깜빡이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눈앞은 점점 깜깜해졌다.
여러분, 미안해요. 인사도 못했지만 먼저 가요. 그래도 고통 없이 가다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죽음이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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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붉은빛이 눈두덩이 위로 느껴졌다. 보드라운 바람이 이마를 스쳐간다. 상쾌한 풀향기가 나고 몸집이 작을 것 같은 새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깜빡, 깜빡, 깜빡. 천천히 눈을 세 번 깜빡거린 뒤 양손으로 눈두덩이 위를 살며시 눌렀다 떼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드넓은 초록색 풀밭과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들,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토끼와 다람쥐가 보인다.
딱 기분 좋은 온기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 동산 위에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아, 나는 죽어서 텔레토비 동산에 왔구나.
씁쓸하게 웃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깡마른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과도하게 웃는 얼굴이 무척 부자연스럽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5019. 눈뜨자마자 개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와.” 얇디얇은 하이톤의 목소리다.
죽은 것도 억울하고, 그의 모기 같은 목소리도 짜증 나는데, 뭐 한 것도 없이 초면인 남자에게 개수작 부린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열받는다. 죽은 뒤에도 이런 개 같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삶도 죽음도 내 맘 같은 게 하나 없다. 심지어 그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발광하는 붉은 불빛조차 거슬린다.
그러나 나는 하릴없이 고개를 작게 한 번 끄덕인 뒤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동산에서 걸어 내려오니 커다랗고 푸른 수영장 근처였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꺄르르 꺄르르 웃으며 공놀이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지나쳐 선베드 하나를 차지하고 벌렁 드러눕더니 옆자리의 선베드 매트리스를 손으로 팡팡 내려치며 나를 쳐다봤다.
뭐야? 앉으라는 건가? 나는 그가 지정해 준 선베드로 삐죽삐죽 걸어가 어정쩡하게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또다시 그의 팔찌가 번쩍거렸다.
“참고로 너는 죽지 않았어.”
내가 죽지 않았다고? 그럼 여기가 어디지? 감옥이 이렇게 쾌적할 리 없는데. 머릿속에서 또 온갖 상상이 범람했다. 그는 붉은 불빛이 점멸하는 팔찌가 거슬린다는 듯이 얼굴을 한껏 구기고 신경질적으로 팔을 흔들면서 말했다.
“잘못했으니 감옥엘 가야 한다고 했을 텐데 그새 잊어버린 건가? 그리고 알아둬. 지금 이 순간에도 너의 죄는 가중되고 있어.” 그는 묵직한 내용의 말을 한껏 무게를 잡고 말했지만, 우스운 목소리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나는 혀를 씹으며 겨우 웃음을 참은 뒤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감옥이라구요? 제가 죄를 지었다구요?” 그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말을 섞고 싶진 않았지만, 너무 많은 불안과 상상으로 돌아버리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정보를 얻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상상하는 감옥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건 알아. 하지만 여긴 분명한 감옥이야. 그리고 너는 이곳의 수감자들 중에 꽤나 심각한 범죄자에 속한다고. 네가 언제 풀려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탈옥은 꿈도 꾸지 마. 석방을 기다리는 일이 탈옥보다 훨씬 현실성 있는 대안일 테니까.”
그의 대답은 어떠한 정보도 되어주지 않았다.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심각한 범죄를 지었다고? 신을 걸고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적어도 최근 삼 개월 간 저지른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 흔한 무단횡단 한 번 하지 않았다. 쓰레기도 꼭 종량제 봉투에 넣었고, 그때마다 용량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채웠다. 버릴 때도 손잡이 부분도 야무지게 묶어서 수거일을 맞추어 내놓았다.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은 적도 없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연체 한 번 하지 않고 제때 반납했다. 몇 달간 누굴 만난 적도 없어서 타인의 신체든 마음이든 상처를 준 일도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몽유병이라도 걸려서 잠자는 동안에 심각한 범죄라도 저지르고 다닌 것이 아닌 이상, 정말로 결백하다.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요즘 푹 자고 일어나도 썩 개운하진 않았는데, 설마?
그때 목소리가 이상한 남자의 손목이 빨갛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진한 불빛이 빠르게 반짝였다. 그는 한껏 얼굴을 구기며 외쳤다. “아, 그만하라고! 이 새끼 정말 답 없는 새끼구만?”
내가 뭘 했다고 그만하라는 거지? 그 순간 또 다른 생각 한 줄기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문제는 내가 아니라 이 남자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알 수 없는 텔레토비 동산에 옮겨진 뒤로 내가 한 일은 눈 몇 번 깜빡인 것과 그를 따라 걸어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아 그에게 질문 두 개 한 것이 전부였다. 나의 상식 선에서는 만난 지 십 분도 안된 생판 초면인 사람에게 난데없이 욕을 먹을 만큼 무례하지도 않은 일들.
그렇다면 혹시 이 남자,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아니면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지 정신이 아픈 걸 가지고 왜 나한테 이래? 이 남자에게 항의를 해도 될까, 아니면 한 대 줘 패도 될까? 감옥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면 나의 죄가 더 가중되겠지? 풀려나갈 날은 한참 미뤄질 테고? 아아, 또다시 끊임없이 굴러다니는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남자의 손목에 걸쳐진 팔찌에서 불빛과 함께 삑 삑 삑 삑 알람이 울렸다. 그는 괴로워하며 절규했다. “아니! 차라리 그게 더 나아, 차라리 나에게 항의해! 나를 한 대 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사람. 내 생각을 읽는다? 이 생각을 끝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불끈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힘이 잔뜩 실린 주먹이 그의 명치에 꽂혔다. 그리고 나의 입은 제멋대로 나불대기 시작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죠? 제가 여기에 끌려온 이유가 대체 뭔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주먹이 다시 튀어나갈까 봐 나의 양손을 단단하게 마주 잡았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텅 비어있다.
그러자 그는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명치를 슥슥 문질렀다. 손목에서 천천히 팔찌를 풀어내고는 그것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 앞으로 걸어왔다. 내 코와 금방이라도 맞닿을 거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왔다곤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