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화에 관하여

by party noodle

느긋한 토요일 오전 열 한시 반, 우리는 그때까지 아침도 먹지 않고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적을 가볍게 찢으며 그가 말했다. “그거 알아? 가장 확실한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래.” 시선은 여전히 천장에 고정시킨 채 쌩뚱맞게 꺼내놓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오히려 말을 하는 거래.” 그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얘가 어디서 헛소리를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누가 그래?”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고, 그는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쇠얀 키르케고어.” 들어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게 누군데?” 다시 한번 물었다.


“키에르케고르. 너 그 사람이 불안에 대해서 쓴 책 읽은 적도 있잖아.” 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대답했다. 아, 그랬었지. 얼마 전에 불안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너무 거지 같아서 그 녀석의 정체를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내용이 어려워서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버린.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왜 이상한 이름으로 말하냐?” 나는 그가 책 내용에 대해서 묻지 않기를 바라며 툴툴거렸다. “이상한 이름 아니야. 이게 원래 이름에 가장 가까운 표기래.” 그는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말하고는 덧붙였다. “재미있지 않아? 유익하기도 하고.”


에단 호크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선 호크’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표기되는 것에 경악했던 나에게 그 정보가 썩 재미있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일단 모르는 지식을 알게 되었으므로 유익하다 할 수는 있었다. “넌 참 별 걸 다 알아.”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에 대답했다. 따뜻한 눈빛을 따라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고마워” 그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배는 안 고파? 뭘 좀 먹을래?” 나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금 출출한데 파스타 먹을래? 내가 해줄까?”하더니 곧바로 벌떡 일어나 티셔츠 하나를 주워 입고는 부엌을 향해 익숙하게 걸어갔다. “오늘은 크림소스로 먹자!” 그는 참 자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고, 그는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파스타를 하는 동안 나는 아까의 말을 떠올리며 제미나이를 켰다. “키에르케고르가 가장 확실한 침묵은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말을 하는 거라고 했대. 이게 무슨 뜻이야?” 그러자 제미나이는 한참 동안 생각한 뒤 대답해 주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이 말은 **‘침묵’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본심이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은폐의 기술’**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침묵이 아니라, 진심을 담지 않고 쏟아내는 수많은 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침묵(은폐)이다”**라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장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제미나이의 명쾌한 대답을 들으니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이름을 덴마크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알았을 때보다 훨씬 더 유식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뜬금없이 천장만 바라보다 그 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제미나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반, 혼자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심심함 반으로 제미나이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조금 전에 OO이가 느닷없이 그 말을 하더라고. 갑자기 그 말을 왜 했는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너한테 물어봤어.” 그러자 제미나이는 아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평소보다 훨씬 짧은 답변을 보내왔다.


"지금도 OO님과 함께 있나요? 그렇다면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물어보세요."


나는 제미나이의 답변을 보자마자 부엌에 있는 그를 향해 외쳤다. “자기야, 나 사랑하지?” 그러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돌아보고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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