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2000년대 트로이카, 서문다미
데뷔작 | 1997년 <귀향>
대표작 | 《END》(미완)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 《이 소년이 사는 법》(미완)
2000년대의 기수. 하늘하늘 예쁜 그림, 선 굵은 이야기, 센 설정, 감각적인 연출, 출중한 대사와 유머 감각의 작가. 뒷모습이 쓸쓸한 캐릭터들이 빚는 시니컬하고도 처연한 정서로 확실한 자기 세계를 구축했으며, 주인공들의 우울, 결핍, 허무, 자기 파괴의 근원으로 뒤틀린 가족/관계가 자주 불려왔다.
콘티 없이 큰 줄기만으로 작업하는 스타일 때문에 예상보다 늘 분량이 넘쳐서, 연재 도중 ‘퇴출’ ‘출판사 도산’ 같은 곤경을 겪었다. 이런 이유들로 매듭짓지 못한 책이 많아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없다’ ‘무책임하다’ 등의 불만을 사고 있는데, 오히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책임감이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이 아닌가 싶다.
1976년생으로 일찍이 만화를 봤고,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중학교 졸업반 때쯤 직업 만화가로 진로를 확정했다. 결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별빛속에》. 작가의 SF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마추어 만화동호회 ‘아마란스’의 창단 멤버로 1997년 『이슈』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단했으며, <껍질의 각인> <귀향> 등 비범한 단편들을 선보이다가 1999년 『이슈』에 처음으로 《END》 연재했다.
세계 굴지의 기업 밴디츠의 회장 ‘랜셔’가 ‘엔드END’를 가져오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궁극의 물질 ‘엔드’는 원래 알의 형태였지만, ‘율리히 하겐트’ 박사에 의해 현재 다섯 쌍둥이(한 명의 본체와 네 명의 클론) 자매로 결정結晶된 상태다. 《END》는 본체로 추정되는 존재이자 평범한 한국인 고등학생 ‘문명인’이 ‘자하’ ‘치에’ ‘카라’ ‘4호’ 등 ‘엔드의 아이들’과 만나면서 일상 너머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SF로, 장쾌한 액션, 치밀한 복선, 쫀쫀한 서스펜스, 거듭되는 반전을 직소퍼즐처럼 짜 맞췄다. 그러나 당대 보기 드문 규모와 플롯, 연출로 독자들을 흥분시켰던 이 작품도, 애초 다섯 권으로 예상했던 분량이 끝 모르고 늘어나면서 출판사와 마찰하기 시작했다. ‘열두 권에서 매듭짓자’는 출판사와 ‘열다섯 권 이상’을 고집한 작가의 입장차가 영 좁혀지지 않는 바람에, 결국 《END》는 잡지에서 퇴출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갈 길을 모색했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단행본 8권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0년부터 《END》와 함께 『해피』에 동시 연재했던 여장 남자의 포복절도 연애담 《이 소년이 사는 법》도 잡지 폐간으로 부득불 중단되었다. 하지만 2002년 『슈가』에서 시작한 《그들도 사랑을 한다》는 그해 ‘독자만화상’ 등을 받고 드라마 CD로 제작되는 성과를 거뒀을 뿐더러, 2007년 단행본 일곱 권으로 마침내 끝을 봤다. 작가 스스로 말하거니와 ‘최초의 학원순정물’이자 ‘최초의 완결작’이었다.
2006년 《순애보》에 <虎患>으로 참여했고, 2009년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 게임》(북폴리오)의 홍보용 티저 만화를 그렸다. 벌여놓은 일이 워낙 방대해서 원고 작업 이외에 외도하는 일이 거의 없는 작가로서 이례적인 행보였다. 2015년에는 동인천 난맥의 거리 풍광을 캐릭터 내면의 알레고리로 삼은 ‘최초의 근친 BL물’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다》를 『이슈』에서 맺었다. 연재를 상의할 당시 출판사와 ‘반드시 15금일 것’ ‘기필코 새드 엔딩일 것’ 등등 서약(?)을 맺었다는데,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폭력이 난무하는 과격한 전개와 차후를 기약하는 듯한 미묘한 결말로 독자들 간 의견이 분분했다.
2018년 1월 시공간을 넘나드는 대하 판타지 활극 《RURE》의 연재 15주년을 기념해 연재처 『파티』의 표지를 그렸다. 물론 여전히 같은 잡지에 《RURE》를 연재 중이다.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