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시청 시민소통팀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환경과에 근무하는 후배가 민원이 접수되었는데 좀 난감하다고 함께 출장하여 도움을 달라고 한다. 강가에서 닭을 키운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같이 나갔다.
닭을 키우는 사람은 시인으로 전부터 안면이 있던 분이다. 서로 인사를 하고는, 대화를 나누는데 ‘언제까지 해결해 줄 거냐?’는 말씀을 드렸더니, 닭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하신다.
코로나 그 힘든 시기에 뿔뿔이 흩어졌던 닭들이 번식하여 어느 날 집이라고 돌아왔다는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시작된 얘기에서는 “사람이 계속 ‘명상’을 하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은 명상을 계속해서 5~6살 기억까지 되살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과연 어디까지 돌아 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명상 활동’이 있었던지, 어린 시절의 기억 몇이 떠올랐다.
나이는 더 어린 시절이었고 구체적이지만 논란의 여지도 있어 서너 살의 기억에 관해서 적어 본다.
<서너 살 아이의 시점>
주위가 깜깜하다. 엄마의 등에 업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두운 길을 가면서 엄마가 말을 건다. 한참 강가를 따라 계속 가는데 마을도 지나간다.
그러다 강가로 내려가더니 강 건너에 대고 소리쳐 부른다.
순덕아버지!, 순덕아버지!
조금 있으니 강 건너에 있는 집에 불이 켜지더니 사람이 배를 타고 온다.
순덕아버지가 타고 온 배를 탔다. 엄마의 마음이 전해진다. 마음이 편해졌다.
<60살, 지금의 시점>
어머니가 4월 초파일에 여주 신륵사로 나들이 오셨다가 버스를 놓친 것 같다.
대신면 집으로 가는 버스는 놓치고 여주대교를 건너 여주군청 옆 신작로로 해서 능서면 백석리까지 가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그 시절 여주도 시내를 벗어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위가 깜깜했을 것이다.
지금의 세종여주병원 근처의 길을 따라 강가 마을 왕대리로 해서 백석리 강가 나루터까지 시골길을 걸어간다.
백석리에서 강 건너 섬에 살았는데, 강가에 순덕아버지라는 뱃사공이 있었다.
<그날의 기억>
그날의 기억은 흐릿하고 단편적이지만, 감정은 또렷하다.
어두운 길이 무서웠고, 엄마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지만 이제야 분명히 알겠다.
세 살, 네 살의 아이도 사고하고 느끼고 기억한다는 것을.
나도 그랬고, 지금 내 아이도, 손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마음을 오래 잊고 살았다.
사람은 누구나 아이였고, 어른이 되면서 잊고 지낸 그 마음을
아이를 키우고 손자를 보며, 나는 다시 떠올렸다.
아이에게도 하나의 세계가 있다.
나는 그 세계로, 아주 먼 길을 돌아
조심스레 다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