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격려

by 박거행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부터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정말 힘든 시간을 살아 오셨구나. 하는 생각.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학력을 조사하는 일이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아버지- 초등학교 졸업 / 어머니 –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적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막내 동생을 돌보느라 학교를 4학년 까지만 다니고 그만두셨다고 했다.


공부란 걸 오래 해보지 못한 부모님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에게 “공부해라, 공부 좀 해라” 하셨을 때. 그 말을 듣지 않고 빈둥대는 우리를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보셨을까.

공부를 해야 당신들 보다는 나은 삶을 살 것 같고.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어머니에게 한소리 들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늘 “농업고등학교에 가서 졸업하면 같이 농사 짓자”고 하셨다.

그래서 6학년 때 반에서 1~2등을 하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공부를 손에서 놓고 놀기 시작했다. 겉으론 괜찮은 척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성적은 꾸준히 상위권이었다. 결국 농고에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까지 봤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입학을 앞두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밥을 먹지 않았다.

하루가 지났을 무렵,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한마디 하셨다.


“농고 가서 뭐 하려고? 집에 땅이 있어? 소가 있어?”


며칠을 굶으며 버티자 결국 아버지께서도 말하셨다.


“그래,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길로 농고에 진학을 포기하겠다는 확인서를 받았고,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에 2차 시험을 봐서 입학했다.


그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뚜렷한 목표없이 살던 내가, 처음으로 ‘대학’ 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으니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아버지의 말씀이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


그 말에 의욕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지방대학에 진학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와 아버지께 말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뭐가 되든 될 테니까. 4년만 지원해 주세요”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 형편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홧김에 입대지원서를 냈고, 휴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왔다.


그때가 1988년. 서울88올림픽이 열리고 건설경기가 호황이던 시절이었다.

그 활기찬 사회 분위기에 복학할 마음이 사라졌다. 결국 부모님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야, 이놈아! 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나서 왜 이리 지지리 못낫냐!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뒷바라지 할 테니까, 대학은 꼭 졸업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이 어쩌면 그렇게 당차게 말씀하셨는지.

결국 복학했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지금 나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앞두고 있다.

가끔은 문득 생각한다.

그때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물론 공무원 시험에 대학 졸업장이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대학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너무도 큰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머니의 격려가 있었다.

어머니의 격려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그 말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청춘의 흔들리던 시절마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나를 붙들어 준 말들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지리 못난’ 삶이 아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 인생 2막을 앞두고 있다.

낯선 시작 앞에서 불안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설렘이다.

남을 위해 살아온 시간을 지나, 이제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믿는다.

어머니의 격려는 끝나지 않았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금도 내 안에 숨 쉬고,

내 삶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는 데 묵묵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엄마의 등에 업혀, 어둠을 걷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