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인가
1988년 3월. 군 전역을 넉 달 앞두고 있었다.
사실 원래는 3개월 15일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88 서울올림픽’의 여파로 전역이 다소 늦어졌다. 육군본부에서 내린 지침이었다. “신병 10명보다 말년 병장 1명이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입대할 때도 1986년 아시안게임 때문에 휴가를 두 달이나 늦게 보냈는데, 이제는 전역까지 15일이 연기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대에서 몇 킬로 떨어진 대공초소에서 독립 근무 중이던 병력이 복귀하여, 완전군장을 한 채 목봉을 들고 구르고 있었다. 그것이 이틀간이나 계속되었고 부대 전체 분위기는 무거웠다.
사건의 전 말은 충격적이었다. 군대에서 금기인 ‘하극상’이 벌어진 것이었다. 소대원들이 소대장을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에 30명의 소대원 중 폭행에 가담한 내 동기 두 명과 전역을 3일 앞둔 두 명, 총 4명이 영창을 가고 나머지는 연대로 재배치되며 소대가 해체되었다. 그리고 대대 병력 중에서 차출을 하여 한 개 소대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그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외딴곳에 독립으로 나가 있던 부대 특성상, 약간의 자유로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 전역을 앞둔 소대원을 위한 송별식이 열렸고, 간부가 약간의 음주를 허용했다. 소대장이 술이 약해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소대원들은 계속 송별식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술에 취해서 들어갔던 소대장이 자다 나와서 “왜 음주를 하냐”고 하면서 소대원들에게 얼차려를 하는 등 물리적으로 제재를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말리던 소대 고참들이 참다가 못해 소대장을 폭행하게 되었다.
소대장은 즉시 대대로 복귀해 당직사령에게 ‘하극상’으로 신고했고, 이는 연대를 거쳐 그날 밤에 사단본부까지 보고가 되었다. 그 결과 다른 병력이 교대 근무를 들어가고, 사고를 친 병력이 단체로 목봉을 들고 구르고 있던 것이었다. 내용을 다 알게 되니, 누구의 잘못인지 분간조차 어렵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는 그 사건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병장이었고, 분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구성되는 ‘문제의 소대’에 병장 자원으로 차출되었다. 병장 둘과 하사 둘을 뽑는다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 제대 말년에 모르는 사람들과 새롭게 생활해야 한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2중대 생활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저녁 9시 경이었다.
점호를 받고 있는데 정문 근무자가 한 여인을 안내하여 들어 왔다. 점호를 하던 소대장은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니, 제대하기로 한 아들이 며칠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지 불안해서 부산에서 출발해서 그 밤에 도착한 것이었다. 소대장은 당황한 가운데도 계속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중대장에게 연락하여 중대장이 급하게 왔는데 중대장 역시 여인에게 죄송하다고 사죄를 하였다. 그 여인은 바로 사건이 있던 '그날 밤' 소대원에게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소대장을 말리다 영창을 간 사람의 어머니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슨 말로 위로 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가 이렇게 나를 찾아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왜 우리가 이런 참담한 순간을 겪어야 할까.
그날의 일은 그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큰 멍으로 남았다.
세 달 후 전역을 하게 되어 연대 본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 소대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더 이상 지휘관의 상징인 푸른 견장을 달지 못한 채, 흐트러진 머리와 지친 얼굴로 사병 식당 줄에 서 있는 그의 모습. 더는 장교의 위엄도 자존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밤에 4km의 밤길을 내려가 부당함을 호소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모습이었다. 직위해제 되었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로 임관한 지 1년 남짓 되었으니 앞으로도 1년을 더 저렇게 있어야 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더라도 지휘관으로서 자질은 의심되었다. 너무나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점심을 먹고는 사단본부로 이동해서 짧은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전역을 하게 되었다.
지금에서 보면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내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으니 88년 전역 당시 나이가 23살, 소대장이 대학 4년을 마치고 임관했으니 24살 정도, 그런데 내 입대 동기들이 나보다 두 세살 많은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 소대장보다 적지 않은 나이였다. 지금에서 보면 고만고만한 나이였고 어리디어린 나이였다. 이제 와서 보니 모두가 너무나 무거운 책임속에서 살아내야 했던 젊은이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이렇게라도 이해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든 돌발적인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는가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옳은 판단과 책임있는 대응이 가능한 사람들이 지휘관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냥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하며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그날의 일은 나에게 리더란 무엇인지, 책임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날을 통해 지금의 나 자신은 어떤 리더였는지 되묻게 된다. “나는, 좋은 리더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