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
박쥐에게 물리면 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두 가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너무 치명적이라 ‘백약이 무효’인 경우.
다른 하나는 애초에 해가 없으니 ‘약이 필요없는’ 경우다.
전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슬프기에,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후자의 경우 즉, 해롭지도 않은데 괜히 불안해서 약을 찾는 상황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민원을 상담하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명백히 문제가 없는 사안인데도, 상대는 납득하지 못하고 뭔가 더 확실한 ‘보장’을 요구한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 다른 사람은 그러다 잘못되었다고 하던 데요?”
“ 혹시 나중에 책임은 누가 지는 거예요?”
“선생님 제가 이일에는 전문가예요. 아무런 문제 없어요“
이럴 때면 참 난감하다. 이쪽은 경험과 규정을 바탕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건데.
그걸 못 믿겠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설명보다 ‘하더라’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사실 문제 있는 사안이라면 차라리 편하다.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 기준과 절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아닌데도, 계속 설명을 요구받는 건 깨 지치는 일이다.
병이 없는데도 처방전을 내놓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행정력의 낭비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일전에 관계기관에서 한 가지 요청이 들어 왔었는데, 처리 금액은 고작 4만 9천 원.
우리 부서에서 그 건에 대해 구두로 처리 방향을 안내했기에 문제없이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른 뒤인 지금에 와서, 관계기관에서 ‘공식적인 지시문서’를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담당자도 바뀌고, 중간관리자도 바뀐 모양이다.
구두로 알려 줬으면 처리하고 정리를 해두면 되는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체도 행정력의 낭비라 생각되어 직원에게 ‘문서로 회신하라’고 지시했다.
문서 하나 쓰는 일이야 금방 끝나는 일이지만, 참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문제도 없고, 금액도 많지 않으며, 애초에 구두로 충분히 안내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처방전을 다시 요구한다.
이 경우도 ‘박쥐에게 물리면 약이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아무 일이 없는데도, 혹시 모를 일을 염려하며 처방전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 요구가 행정 절차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다 보면, 정작 필요한데 쓸 힘조차 빠져버린다.
아무 문제가 없는 데도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
그 불안을 없애 주는 것은 논리도, 경험도 아니다.
그저, 공식 문서 한 장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그 ‘공식 문서’는 ‘아프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곳에서 불필요한 처방전을 달라고 요구하게 되지는 않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