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응답하라1988" 13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13회차에서는 김정환(류준열 역)의 아버지가 운동하다가 넘어져 병원응급실로 실려 가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은 걱정이 되어 병원에 모이고. 이웃들도 걱정이 되어 함께 와서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다린다.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가족애’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대목이 인상 깊었다. 바로 이웃에 관한 이야기, 제도에 관한 이야기다.
정환의 아버지는 허리가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때 하필 대형 사고로 응급실이 마비가 된 상황이라 수술이 지연된다. 분주히 지나가는 간호사와 의료진을 붙잡고 사정을 하는데도 방법이 없다. 가족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때, 부원장이 갑자기 내려와 정환 아버지의 차트를 들여다보며 직접 수술을 집도하겠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천재 바둑기사 최택의 조용한 도움이 있었다. 바둑을 통해 병원장을 알게 된 최택이 조심스럽게 부탁했고, 병원장은 응급상황 속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원장에게 수술을 맡긴 것이다. 합리적인 도움이다. 원칙을 지키되 따뜻함을 더한 것이다. 그 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이웃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김영란법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도음’이라는 말에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물론 법은 필요하다. 공정함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러나 그 법이 사람 사이의 온기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법안에서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10여 년 전, 화물자동차와 전세버스 인허가 업무를 맡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양도양수 서류가 접수되면 법적으로는 7일 이내에 처리하게 되어있지만, 나는 가능한 바로 처리해 주었다.
특별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업무가 생계와 직결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허가가 나면 하루 더 일을 나갈 수 있고, 하루 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당시 화물차나 전세버스는 하루 수익이 평균 60만 원 정도였다. 5일을 단축하면 300만 원이라는 금액이 생긴다. 반대로 늦게 처리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민원인의 몫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민원인들이 음료수를 슬쩍 놓고 가는 일이 생겼다. 특별히 막기도 그렇고, 굳이 받을 필요도 없어서 그냥 두었다. 나중에는 그것이 쌓여서, 민원인을 위한 대기 음료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그 8천 원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음료를 받지 않았더라도 일을 똑같이 처리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작은 성의에 담긴 절박함’과 ‘그 절박함을 이해하려는 내 마음’이었다.
사람은 도움을 받을 때보다 도와줄 수 있을 때 더 따뜻해진다.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온기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이다. 무엇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일했느냐가 중요하다.
드라마 속 병원장처럼, 천재 바둑기사 최택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며.
그날 병실을 나서는 길. 가족도 이웃도 모두가 안도하며 웃을 수 있었던 건 수술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따뜻한 선택이 여럿의 마음에 평안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