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글자
2009년, 관광과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문화관광해설사 선생님들과 함께 예산으로 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고택에 들렸는데, 고택 기둥 위에 걸린 글귀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於人何所不容(어인하소불용)” –사람에게서야 무엇인들 용납할 수 없겠는가”
하얀 판자에 파란 글씨로 쓴 글귀는 단정했지만 묘하게 부드러웠다.
그중에서도 ‘용(容)’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갓을 쓴 선비가 활짝 웃고 있는 얼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160여 년 전의 글씨에, 이렇게 위트가 담겨 있다니. 조선시대 선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너그러움을 이렇게 웃는 얼굴 하나로 남기고 싶었나 보다.
김정희는 실학자이자 서화가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뒤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이며, 구문화의 체제 안에서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추사체’로 기억하지만, 그의 그림과 글씨, 글과 사람됨에는 단순히 엄격함만이 아닌 재치와 해학, 여유가 함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용(容)’자 속 웃는 얼굴은 단지 글자 이상의 의미였다.
조선 시대의 관리가, 갓을 쓰고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시대에, 웃는 얼굴 하나가 남아 있다는 건 그 시대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유머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시기만 맞는다면 무거운 자리를 가볍게 만들 수도 있고, 다수를 편안하게 만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다 이유가 있다.
그 유머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공직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질서가 잡히고 기본이 잘 지켜지는 조직일수록, 구성원들에게 여유가 있고, 그 여유에서 건강한 유머가 나온다. 공무원의 생활은 기본적으로 단정해야 한다. 흐트러지지 말아야 하고, 자기 역할을 지켜야 한다. 단정함 위의 웃음. 그것이 진짜 여유다.
예전에는 그런 문화가 분명히 있었다.
매월 월례회의 때, 기획실장이 단상에 올라 공무원의 신조를 낭독하곤 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하나, 국가에는 충성과 헌신을
…
하나,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
그중에서도 네 번째 항목, “생활에는 청렴과 질서를”이라는 문장이 참 좋았다.
지금은 개정되어 사라졌지만, 그 문장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가 앞장서서 없앤 건지, 아쉽게도 그 문화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돌아보면, 일이 꼬일 때는 늘 내 마음부터 흐트러져 있었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바쁠수록 외부에 신경 쓰기보다, 나 자신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걸 공직생활을 하며 조금씩 배워 왔다.
고요히 웃고 있는 ‘용(容)’자 하나에서도 그런 메시지를 본다.
바쁠수록 돌아보고, 지칠수록 웃을 수 있는 힘.
추사의 붓끝에서 느껴지는 그 유쾌한 위트가, 오늘도 내 마음에 여유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