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논두렁 밭두렁의 정기

정년퇴직하는 날, 오늘만 할 수 있는 얘기

by 박거행

논두렁 밭두렁의 정기, 땅의 기운은 산소(묘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90년대 풍수지리 분야에서 유명했던 육관도사 손석우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면장이라도 하려면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

처음엔 그 말에 끄떡였지만, 내 삶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릴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주에서 태어나 지금껏 공직생활을 해왔다. 내 동생도 나보다 3년 먼저 들어와 같은 길을 걸었다. 우리는 같은 고향,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랐고, 굳이 따지자면 같은 논두렁과 밭두렁의 정기를 받으며 자란 셈이다.

그런데 지금 동생은 면장으로 재직 중이고, 나는 팀장으로 33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오늘 퇴직이다.

장기교육(공로연수)을 가는 형식이지만 정든 직장과는 이별이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함께 근무했던 선배 중에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둘 다 성실했고 나란히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형은 사무관으로 동생은 팀장으로 퇴직했다.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도 결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건 운명이잖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그릇이 있는 거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잘되길 바라며 명당을 찾고, 좋은 이름을 짓고, 사주를 보고, 신앙을 가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인생이 버거울 때는 어디엔가 기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정작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운도 중요하지만 실력과 태도, 그리고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꾸준히 실력을 쌓고, 일이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보고,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버텨 내는 것, 그게 결국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


살다 보면 남보다 조금 늦을 수도 있고, 돌아가는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외부 탓을 하곤 한다. 지세가 어쩌고, 이름이 어쩌고, 사주가 안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기운은 산소나 집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내면에 깃든 단단함, 그게 바로 인생을 일으키는 뿌리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할 것 없다.

누군가는 산소 덕을 본 것이고, 누구는 복을 타고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자기 길을 묵묵히 걸은 사람이 제 자리에 다다른다.


논두렁 밭두렁의 정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실력을 갖춘 사람은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내가 33년을 일하면서 배운 진짜 풍수는, 바로 그것이었다.


에필로그

2년 전쯤에 사무관 승진이 궁금하였던 때가 있었다. 시장이 결정하면 될 일이지만 시장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신점을 보는 점집이었는데 나이를 이야기하니까, 여성이셨는데 동년배라고 반가워 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거실까지 따라 나오더니 하는 말이 "목소리가 참 좋아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고! 전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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