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카페 등의 공공장소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이제 쉽게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 갔던 홍콩과 오사카에서도 스마트 폰에 온 시선을 다 내어주고 있는 지하철 속 사람들을 보며 이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책 읽는 사람을 보면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랐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고 서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고른 책 첫 장에 마음 담은 글을 써 수줍게 선물하던 때. 그 때는 책이나 신문을 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멍하니 있는 것이 눈치 보였지만, 지금은 책을 보는 사람들이 눈치 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이 좋아서, 그저 읽고 싶어서 읽을 뿐인데,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도 상대가 오기 전에 얼른 책을 넣기도 하고, 전화를 받으면서 지금 뭐하고 있었냐는 질문에도 그냥 다른 말로 얼버무리는 것. 이러는 데는 물론 내 자신의 소심함이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거나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가면 요즘 말로 ‘갑분싸’가 되는 것이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을 뿐인데 왠지 척 하는 느낌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분위기에 스스로가 위축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독서자들은 서로를 찾아서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거나 블로그 등의 SNS 공간 안에서야 비로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 속에서 무기력해 있거나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외부를 향해 분출되어 타인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 수많은 관계 속에서 힘겨운 사람들에게 책을 통한 치유를 권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말에 책을 통한 위로에는 개인차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다독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경쟁적인 소비로 마음이 더욱 허하기만 하다면, 일회적인 즐거움들을 벗어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스스로 마음의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어떨까.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는 삶의 층위가 달라진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대신 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책 읽기로 인생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기에 어떻게 읽기 시작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 볼 것을 권유한다. 영화, 음악, 요리, 드론 등 자신의 관심사를 키워드로 해서 첫 책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 관심 많은 사람이 관련 책을 보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책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면 그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인물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그림 등 자신의 흥미를 이끄는 것이 있으면 또 그것을 찾아 읽는다. 딱 자신이 관심 가는 것 까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다 보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또 다른 관심 주제가 생긴다. 최근 들어 부쩍 대화가 어려워진 자녀와의 관계가 고민이라면 교육에 대한 책을 보고 그로 인해 심리학과 철학에까지 장르를 확장시켜갈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만의 책 숲’이 생긴다. 영상 세계가 대체 할 수 없는 활자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고전부터 시작한다면 첫 권이 마지막 책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베스트셀러 속에서 고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독서는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읽기 시작해야 지속적인 습관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투리 시간에는 짧은 에세이, 무더운 여름밤에는 시간을 잊게 하는 소설, 마음을 다스릴 때는 시, 명쾌하고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 할 때는 사설,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는 깊이 있는 전문 서적. 이렇게 샌드위치 독서법으로 하루에 여러 권 읽기도 가능해 지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순간 환하게 빛나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내 마음의 스위치를 켜준다. 마음의 빛깔이 달라지면 내가 사는 세상도 환해진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글 숲을 거닐고 있는가. 그곳이 당신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