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날, 김동률의 ‘청춘’ 이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우리들 만났다 하면 날이 새도록
끝나지 않던 이야기 서로의 꿈들에
함께 부풀었었고 설레었고 내일이 두근거렸지
언제부턴가 하루가 짧아져만 갔고
우리들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 갔지
영원할 것 같았던 많은 것들 조금씩 사라져 갔지
서로가 참 솔직했었던 그때가 그리워
때로는 쓰라렸고 때로는 부끄럽고 그래서 고맙던
거칠 게 없던 시절
모든 걸 나눌 수 있었고 같은 꿈을 꾸던 시절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지금 무엇이 중요하게끔 된 걸까
다들 모처럼 모인 술자리에서
끝없이 하는 이야기 그때가 좋았다
언제부턴가 더는 꺼내지 않는 스무 살 서로의 꿈들
우리가 참 힘이 됐었던 그때가 그리워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나무라고 그래서 고맙던
외롭지 않던 시절
모든 걸 나눌 수 있었고 같은 길을 걷던 시절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지금 무엇이 소중하게끔 된 걸까
우린 결국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푸르던 그때 그 시절 추억이 되었지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아직 뜨거운 가슴이 뛰고 다를 게 없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걸까"
그 시절에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걷고 달린다는 막막함과 답답함에 벗어나고 싶었고, 이미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다.”라고 말하면 강한 반감도 들었다. 게다가 다른 걱정 없이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공부만 하면 될 때라는 말은 또 얼마나 식상하던지.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흘려 내가 그 어른들의 나이를 살아가게 되니 그것이 괜한 잔소리가 아닌 그리움임을 절감하게 된다. 사랑과 도전에 대한 쓰라림으로 가슴 아프던 그 시절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동질감 속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에 의해 관계를 나누고 정리하는 것이 보편화되는 게 서글프다. 문득 시절 인연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 그들의 삶이 무탈하기를 빌게 된다.
언젠가 친구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 딸과 이야기를 하고 나오다가 내 섣부른 조언에 미안한 마음이 든 적이 있다. 나 역시 내 나이의 시선으로만 그 시절을 바라보며 문제를 풀어가려 했던 것이다. 조금 더 먼 길을 걷고 있는 내게는 물리적으로 인생의 작은 점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십 대의 딸에게 있어 그 일은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아이는 살면서 매 순간 처음인 사회적 관계와 경쟁 속에 끊임없이 선택하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다양한 개인의 색깔을 같은 교복 속에 묻어 둔 채 오로지 미래를 위해 틀 안에 갇힌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오늘도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리며 족쇄 같은 가방을 짊어지고 가는 청춘에게, 지금 걷고 있는 모든 걸음이 소중한 열쇠가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라는 말을 건네며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뭐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라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