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전화 속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있는 내 세상의 온기를 앗아가는 사람이 있다. 괜히 연락했나 싶게 만드는 사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서서히 그 거리를 무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가 가족이라면 하릴없이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그래 주지 못하냐고 속상해하거나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만의 잣대 안에서, 혹은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가두기도 한다. 너를 위한다는 생각 속에 건넨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너를 통해 나를 지켜가기 위함이 아닐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한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감을 그저 묵묵히 바라봐 주는 건 아닐 런지. 그에게, 그녀에게, 내 아이에게 쏟아내는, 너를 위한다는 말속에 묻힌 수많은 나를 위한 말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만날 때마다 언제나 “아유, 이뻐.”라고 말씀해 주던 분이 계신다. 짧은 만남 속 특별한 할 말이 없을 때도,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 가벼운 인사로 스칠 때도, 바쁜 전화 속에서도 “그래... 아유, 이뻐.”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마지막에 꼭 넣어주신다. 쑥스러운 웃음 짓게 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은 그 말은 내 마음을 달뜨게 한다. 왠지 예쁘게 웃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심리학에서 ‘레테르(letter) 효과’라는 것이 있다. 교육학에서도 비난보다 칭찬이라는 것으로 많이 적용되는 이것은 라벨에서 나온 말이다. 무언가 부족한 사람에게 기대치의 라벨을 달아줌으로써 그 사람의 잠재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타인을 이끌 수 있는 이 레테르를 활용하여 높은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오늘은 어제 사용한 말의 결실이고,
내일은 오늘 사용한 말의 열매이다.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에서 이해인 수녀님이 건네 준 글귀와 함께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사랑의 언어야 말로 진정한 웰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담는다.
내 말이 어느새 너를 향한 가시가 되기 전에, 곁에 있는 그가, 그녀가, 내 아이가, 지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기 전에, 털썩 주저앉아도 때가 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그저 어깨 한 번 툭 쳐주며 말없는 눈으로 웃어 보면 어떨까. 따스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말없이도 힘이 되는 사람을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