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던 떠남에서 배움의 여행으로
안녕하세요. 여행자 여러분 여미나입니다.
떠남의 파편 5,6,7을 통해 우리는 떠남을 추구하는 두 유형 내적 요인인 "빛"(지식, 지혜, 진리, 종교 등)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적 요인인 "가치"(물질 혹은 기술 등)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왜 떠남을 추구하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서 각 유형이 다르게 부른 "이상향"(도원향, 천국, 엘도라도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재미있었던 점은 "빛"의 이상향은 오두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 "가치"의 이상향은 인물 혹은 책 등의 정보가 있고 모두 바다에 위치하고 있어 마치 배를 타면 갈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상향을 찾아서 바다로 떠난 사람들 그리고 귀족에서 출발한 배움과 경험의 여행입니다.
엘도라도를 찾아 바다로 떠난 사람들
아래에 적어 둘 대항해시대 대표 인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러분이 직접 여행 장소에 가셔서 그 현장에서 오감을 이용해 투어를 들으시는 게 좋으므로 전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 스페인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 1452 - 1506), 이탈리아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 - 1512) 또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1460- 1524), 프란시스코 피사로 곤살레스 (Francisco Pizarro González, 1471 - 1541), 페르디난드 마젤란(Fernão de Magalhães, 1480? - 1521), 곤살로 히메네스 데 퀘사다(Gonzalo Jiménez de Quesada, 1509 - 1579),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Sir Francis Drake,1540? - 1596)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 번쯤은 들어본 이 항해사(상인, 학살자, 정복자, 해적)들이 활동한 시기를 우리는 대항해시대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모두 배를 이용하여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El Dorado)을 찾아 떠나간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는 목적은 국가적이던 개인이던 다른 장소의 상대가 가진 가치 있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것과 바꾸는 것(혹은 뺏는 것) 이였으며 이는 상인, 자본가라는 계급이 당시 사회에 주류가 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류가 정착을 한 이후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굳어진(왕족, 귀족, 평민, 천민 등의) 사회의 구성방식인 신분 계층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돈과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대우를 받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사람들에게 있어 돈과 물질적 풍요를 얻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항해를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떠남의 파편의 상인을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상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상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빠르게 알아내는 것(정보),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더 멀리 더 빠르게 도달하여 나의 물질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요. 역사적으로 모든 국가에서의 항해가 발전하는 시기는 그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흥 상인, 부자들을 바라본 그 시대 사람들은 명확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며, 이제 저들처럼 가능한 한 빨리 남이 알지 못한 정보를 얻어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가봐야 한다는 걸 말이죠.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아웃사이더)
상인에서 귀족으로 발전된 떠남
빠른 정보와 교역의 선점,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한 인물은 당연히 같은 상인이었습니다.
물건을 가져와 판매하는 사람이던, 자신만의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건 간에 상인들은 내 물건과 먼 곳에서 가져오는 물건의 가치를 비교해야 했고 이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었죠.
한자동맹(독일어: die Hanse, 네덜란드어: de Hanze, 에스토니아어: hansa, 폴란드어: Hanza, 스웨덴어: Hansan, 영어: Hanseatic League)은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연맹이다.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으로 했다. 12세기말 북독일의 몇몇 도시에서 시작되어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확장되어, 현대의 8개 국가에 걸쳐 약 200개의 정착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동쪽의 에스토니아에서 서쪽의 네덜란드, 내륙으로는 쾰른, 프러시아 지역, 폴란드의 크라쿠프까지 그 세력이 미쳤다.
상공업의 발달, 선박 기술의 발전, 상인 연합, 길드의 시작 등 당시의 상인들이 성장한 이유는 참 많겠지만 저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 상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사람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동경합니다. 돈을 버는 직업과 그 방식이 다양해졌을 뿐 현대, 삼성, 엘지 혹은 잘 나가는 프랜차이점을 운영하는 성공한 기업가 혹은 사업가를 보면서 아마도 대다수가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는 과거에도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인들을 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져가는 경쟁자로 느낀 귀족들은 그들의 성공요인을 모방하고 이용함으로써 그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교육이 된 떠남
상인들을 바라보는, 아니 정확하게는 성공한 부유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겁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감정이겠죠. 하지만 그런 감정만으로는 그들처럼 될 수 없죠.
지금의 성공 강의와 자기 개발서처럼 조금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은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명확했죠.
그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앞서 본 베니스의 상인 혹은 몰타의 유대인 책을 보면 돈을 다루며 냉혹한 계산을 하는 악역의 상인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나옵니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관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의 상인들은 항상 타고난 귀족의 신분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동, 서양의 모든(성공한) 상인들은 고정된 신분의 질서를 뛰어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에게 붙은 돈을 다루는 천한 직업이라는 이름표는 부유함으로 바뀌게 되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한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곧 그들의 직업인 상인의 기본적인 행동 하나를 발견합니다.
떠나서, 다름으로부터 배운다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나의 정착지를 떠나서 "나의 가치와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익힙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내가 정착한 곳이 아닌 다른 다양한 장소의 경험을 한 시야와 가치를 비교할 안목을 주었고 그러한 경험이 그들을 성장시켰죠.
이런 떠남과 경험, 가치판단 등은 예전으로 말했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사소해 보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장인들의 몰락입니다. 한 장소에 머물며 최선의 가치를 추구해 온 수많은 사람들(도제 시스템을 가진 장인, 농사, 목축, 의복, 자재 등등)이 한순간에 망했기 때문이죠.
참조 : 물론 국가의 중상주의 정책 추진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나만 알아서는 안 되는 시대
이때부터 내가 모르는 곳에 있는 다름을 이해하려 하고 그것이 나에게 끼칠 영향을 계산하는 건 더 이상 상인만의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했던 것이었죠.
《뒤러의 코뿔소》(Dürer's Rhinoceros)는 알브레히트 뒤러가 르네상스 시대인 1515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그림은 1515년 초 리스본에 도착한 인도코뿔소를 보고 어느 화가가 묘사한 글과 간단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뒤러의 목판화는 코뿔소의 정확한 모습을 묘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다른 곳을 경험할 기회보다 다른 곳에서 오는 물건과 동물 그리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다름을 안다는 것
어떤 장소에서는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다른 장소에서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 똑같은 물건이라도 국가별로 상품에 차이가 난다는 것, 심지어는 인간도 어떤 국가에서는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등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은 새로 온 상인보다 높은 가격 때문에 장사를 망친다. 수리남에서는 홍어가 한국보다 싸다는 사업 아이템을 접한다, 이탈리아는 꽃게가 늘어나 처치 곤란을 겪었다.)
정착을 추구한 후 시간이 많이 지난 당시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것은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떡하든 따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었죠.
그리고 그때 "경험주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와 같은 것으로 어떠한 성분도 생득적 관념(innate ideas)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에게 지식과 추리의 재료인 관념을 주는 것은 경험뿐인데, 경험은 감각과 반성으로 나뉜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경험주의 학자들이 말한 이 주장은 당시의 상인, 부르주아들, 새로운 자본가, 기업가들의 성공의 이유를 알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랜드 투어
내가 태어난 장소를 의도적으로 떠나 내가 정한 장소에 도착해서 나와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을 배우고 경험하는 행동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당시의 귀족들은 이것을 투어라고 불렀습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는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문물을 익히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리처드 라셀의 저서 《The Voyage of Italy》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책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를 도는 그랜드투어를 다녀온 사람만이 리비우스와 카이사르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인용되고 있다.
이러던 여행행태는 1700년경에 이르러 종교갈등이 완화되고 경제력이 향상되며 변화되었다. 예법을 익히고 전쟁과 외교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자기가 속한 계급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앞선 해외의 문화를 경험하고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영국, 독일과 같이 유럽의 문화적 변방에 속한 국가의 귀족들은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이 고전문화의 유산이 찬란히 남아있는 곳으로 앞다투어 자녀들의 장기 여행을 보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그랜드 투어의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상인 같이 특수하게 떠나는 유형을 제외하곤 아직은 정말 돈과 시간이 많은 귀족 또는 상류층만이 갈 수 있는 개념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시작된 그랜드 투어는 교육과 배움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의 여행은 여러 가지로 상인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귀족들의 투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배움의 방법으로 대중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단어인 ‘아비투스(Habitus)’라는 말은 ‘가지다, 보유하다, 간직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habere’에서 파생한 말로 그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습관과 행동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하지만 책은 성공의 방정식 같은..)
독일의 Doris Märtin 이 해석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그리고 부자들의 습관을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은 상류층의 행동, 습관 그리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명함 하나가 나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신흥 부자,
음식 문화에서 논란이었던 면치기와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먹는 장면)
어쩌면 이 부분(배움과 교육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습관)을 보며 여러분은 예전의 사회와 지금의 사회를 비교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사람, 혹은 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정말 끝이 없구나라고 느끼실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으로 확실해진 하나의 이야기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배움의 방법으로 탄생한 "투어"
오늘은 어떻게 "상인들이 추구한 떠남"이 가치를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과 경험"의 수단인 투어로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드디어 "여행의 파편"이라고 쓸 수 있겠네요.
그럼 오늘의 글도 어떤 분에게는 좋은 인사이트가 되기를 바라며 다음 시간에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서 여행의 의미가 어떻게 지금처럼 변하게 됐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미나-
참고 글
그랜드 투어
17세기말 이전까지 영국의 교육은 다른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좁은 지리적 범위 안에서만 행해졌다. 귀족 자녀들의 교육은 런던 내의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2~3년을 공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부친을 도와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 패턴이었으며, 국가 간 종교갈등으로 인해 국내 도시여행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여행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아비투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
또한 그는 우리가 어떤 가치관, 선호, 취향, 행동 방식, 습관으로 세상을 맞이하느냐는 우리가 가진 행동, 혹은 습관 같은 아비투스에 달려있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타고난 자본(돈) 보다 심리자본(상상력, 통찰력), 문화자본(교양 수준), 지식자본(전문지식), 경제자본(자산), 신체자본(건강한 몸), 언어자본(세련된 언어), 사회자본(네트워크)의 7가지 요소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