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405iIGSn-8?si=s9yQzxHbuoamAlf2&t=1304
페이스북에는 거의 매일 페친의 생일 알림이 뜨지만, 나는 나의 생일에도 남의 생일에도 크게 관심을 안 가지려 노력하는 편이다. 가족이 아니면. 그런데 며칠 전에 뜬 알림은 왠지 관심이 갔다. Jim 씨의 생일이구나. 그의 프로필 페이지에 가 본다. 몇년간 생일 축하 메세지만 있고 업데이트가 없다. 연세 드신 분들의 소식이 궁금하면 으레 하던대로 obituary를 검색해 본다. Jim 씨는 4년 전 2021년 9월에 돌아가셨다. Jim 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7년 여름이었다. 우리 부부를 다른 주로 떠나 보내는 작은 자리에 Jim 씨와 부인 Ann 씨도 함께 해 주었었다.
지금 사는 주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주에 살 때 일했던 주말 한글학교 성인반에 출석했던 로컬 주민 Jim 씨. 그의 부인 Ann 씨가 먼저 내 성인반의 수강생이 되었었고, 얼마 후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한글학교에 성인반을 만들어서 가르치는 곳을 이동했을 때 Ann 씨는 남편 Jim 씨와 같이 나를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을 옮기며 그 주를 떠나기까지 총 2년 반동안 우리는 같이 공부했다. 매주 아주 간단한 한국어 대화를 배우고, 같이 영화를 끊어 보며 표현들을 배우고, 특별 활동으로 한국 요리나 종이접기, 부채 만들기 같은 것들을 같이 배웠다.
Jim 씨와 Ann 씨는 50대 후반 정도였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이들어 보였던 백인-일본계 미국인 부부였다. 그 부부는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을 위해 한국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고, 요리를 배웠다. 그리고 그 아들과 한국으로 여행을 다녔다. 토요일에는 한글학교에 자기 가족의 앨범을 가져 와서 가족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곤 했다. 어느 부활절에는 본인들의 교회에 가는 대신 우리 한인 교회에 와서 같이 내 서툰 통역을 들으며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던 그 주의 작은 저녁 식사 자리에 와서 함께 환송해 주었었고, 그리고 아주 작은, 파란색으로 동양풍 그림이 그려진 간장 종지 한 쌍을 선물로 주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이사를 많이도 다녔다. 동부로 서부로 직장을 따라서 물에 뜬 나뭇잎처럼 이사를 다니다, 몇 해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두 접시 중 하나가 깨졌다. 비싸지도 않을 것이고 상표도 없는, 특별한지 알 길이 없는 소박한 종지였지만, 예뻐하며 쓰던 그릇 하나가 깨져버리니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나머지 성한 접시는 그예 찬장 깊숙히 넣어 버렸다. 그때가 아마 그 즈음이었나보다는 생각이 든다. Jim 씨가 소천하신 그 즈음.
그리고 수년이 지나 지난 주쯤인가, 어떤 주방도구를 찾아 살림을 헤쳐대다가 그 한 짝 그릇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래서 Jim 씨가 무의식 속에서 내게 말을 건 것인지, 그래서 며칠 후 그의 생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의 페이지에 방문해 본 것인지. 그리고 그의 소천 소식을 알게 된 것인지. 그런 것 같다. 아마도 코비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페이지에 돌아가서 타임라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소천 3개월 전까지도 그는 글을 올리고 있었고, 건강한 기색으로 온라인 회의를 하는 모습을 캡쳐해서 게시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급작스럽게 그는 타임라인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딱 8년이 되었고, 돌아가신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이날, 말수는 적었지만 그 존재로 주변을 편안함과 밝은 따스함으로 채우던 그를 회고한다. 그의 돌아가시던 길이 평안했길 뒤늦게 기도한다.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조용한 다정함과 호의, 나이가 들어서도 변치 않던 배움의 일상, 부인과 아들을 위한 헌신들을 기억한다. 그가 땅에서 했던 많은 선행들을 신께서 기특히 여겨 주시고 지금 밝고 행복한 곳에서 기쁨만으로 빛나시길 기도한다.
Rest in Peace, dear Mr. J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