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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 영화인 Oct 13. 2023

경기에 심판이 없는 스포츠가 있다?!

위대한 스포츠맨십에 대하여

믿기지 않겠지만 제목 그대로다.

유포의 기본 룰은 지난 회차에 간단히 적었지만, 가장 핵심은 바로 이거다: 유포 경기에는 심판이 없다.

이게 웬 오픈북 기말고사 같은 상황이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즐기면서 게임하자는 유포의 모토에 걸맞게 창시자는 심판을 두게 되는 순간 경기가 점수 위주, 평가 위주로 변질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에 심판을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유포 경기는 스포츠맨십에 기반하여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진행된다.


스포츠맨십이란, 스포츠맨이 지녀야 하는 바람직한 정신자세를 의미한다. 기본적인 에티켓과 매너를 장착하고,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며, 상대를 향해 예의를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말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안타깝게도 모든 스포츠에서 스포츠맨십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심판이 없는 유포 경기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살펴보자.

경기 도중 상대방이 반칙을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간단하다. 어느 누구든 파울을 외치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파울 이전 상태로 돌아가 경기를 이어 나간다. 만일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는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럴 때는 각 팀 주장들끼리 협의하여 결론을 도출해 낸다.

심판이 있으면 한 번에 결론을 내줄 수 있을 텐데 심판 없이 잘잘못을 따지자니 어찌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맨 정신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꽤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고차원적인 룰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국, 논란이 발생하지 않게끔 룰에 맞춰 진정한 페어플레이를 하기 위해 더 신경 쓰고 노력하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더 보자.

유포 경기를 하다 보면, 링을 잘 못 던져서 혹은 받지 못해서 링이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링을 스틱의 끄트머리로 먼저 찍은 사람이 임자다. 만약 양쪽팀에서 동시에 링을 찍으면 어떻게 될까? 누구에게 순서가 돌아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심판이 없으면 이처럼 찰나에 발생하는 해프닝을 결론 지어줄 사람이 없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심판이 있더라도 결론을 내주기 어렵기도 하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만인이 평등해지는 게임. 그 누구라도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하게 되는 전지구적 솔로몬급 현명한 문제 해결 방식이 있었으니, 

바로 가위바위보다(두둥!)


헛웃음이 나왔다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제 유포 경기에 적용되는 엄연한 룰 되시겠다. 양 팀의 선수가 동시에 링을 잡았을 때,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기 도중에 해당 선수 둘이서 가위바위보를 한다. 당연히 이긴 사람이 링을 잡을 기회를 얻고 진 사람은 물러난다. 참 소소하고 귀여운 룰이다. 언어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순한 확률 게임이 이 순간만큼은 가장 중요한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이다. 

유포 중에 가위바위보를 하다 보면 확률 게임이긴 하지만, 유독 가위바위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유독 특정 사람이랑 할 때만 이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운도 실력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게임이라는 게 꼭 복잡하고 어려워야지만 그 게임이 흥미로워지는 게 아니다. 모두에게 재미있으면 되는 거다. 




현직자가 느끼는 유포의 매력


그렇다면 유포의 매력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남들이 말하는 유포의 거창한 매력 말고, 내가 직접 운동을 하면서 느낀 매력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 보겠다.


1. 시작이 쉽다

나 같은 개복치 멘탈을 가진 사람들이 시작하기에 허들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부터 농구공 쥐어주고 골 넣어봐!라고 한다면 그날 이후로 다시는 공을 잡지 못할 사람이 바로 나다.

유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특장점 없이 습관성 운동을 했었다. 남들 다 하는 요가, 필라테스, 수영 다 해봤다. 하지만 혼자 하는 것은 재미없고, 같이 하자니 공이 무서워서 선뜻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없었다. 유포의 링은 고무로 만들어져 있고 재질이 딱딱하지 않다. 게다가 주로 포물선을 그리며 예측 가능한 형태로 날아오기 때문에 잡기가 쉽고, 피하기는 더 쉽다. 가끔씩 실수로 링에 맞을 때가 있는데, 맞아도 아프지가 않다. 이런 점이 나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 되어 처음 배울 때부터 거부감 없이 배울 수 있었다.


2. 합법적으로 머리 풀고 뛰어다닐 수 있다

나는 다 큰 어른이 된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도 마음속에 철없는 어린이의 면모가 남아 있다고 믿는다. 취준생, 회사원, 자영업자 할 것 없이 본격적으로 판 깔아주고 (말 그대로) 실컷 뛰어놀게 해 준다면 좋아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가끔 트위터를 보다 보면 이런 글을 볼 때가 있다: [어른들도 어디 넓은 데서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글에 공감하는 사람 수도 많고 반응도 좋은 편이다.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느라, 그리고 어른 흉내를 내느라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미없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유포는 이런 뛰놀고 싶은 마음을 당당하게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운동이다.


이쯤에서 창시자가 유포를 개발하게 된 계기를 풀어보겠다.

창시자는 어린 시절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공을 던져주면 개가 물어오고 다시 던져주면 또 물어오는 놀이를 자주 했었다고 한다. 산책을 하다가 공을 더 효율적으로 던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걸로 공을 던졌더니 웬걸, 공이 더 잘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창시자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운동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과학공학자, 올림픽위원회 위원, 체육교사들을 데리고 몇 년 간의 연구 끝에 2010년에 유포라는 스포츠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유래를 듣게 되면 납득되는 것이, 유포를 하다 보면 내가 공을 좇는 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런데 그 느낌이 기분 나쁘지가 않다. 한참 동안 링을 던지고 주워오고 하다 보면 몸이 가뿐해지고 오히려 에너지가 샘솟는 것이 느껴진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마냥 해맑게 꺄르륵 거리며 단순한 신체 활동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첫 연수 이후에 '못하지만 재미있어서' 유포를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3. 멱살 잡혀서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게 된다

유포는 강제성이 있다. 의지박약인 나 같은 사람들은 도중에 포기하는 게 쉽다. 살짝 발만 담가 보고 아니다 싶으면 몇 달 만에 발 빼고 다시 운동 유목민이 되는 것이 일종의 버릇이자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내가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하는 운동의 가장 큰 함정이다. 그런데 유포는 팀스포츠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의외로 나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유포를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경기가 불가능할 때가 많다. 15분간 내리뛰어야 하는데 내가 쉬면 팀이 진다. 그러다 보니 그냥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력은 자연스럽게 는다.


이게 내가 유포를 하면서 느낀 매력이다. 배우기는 쉽고, 승부에 대한 압박은 덜하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운동을 하게 해 준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매력과 장점이 있지만, 직접 해보면서 느껴보길 추천한다.


그럼 다음 이어질 글들에서는 유포 동호회를 하면서 경험한 일들, 그리고 배운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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