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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 영화인 Oct 14. 2023

나의 망한 운동 역사

나를 강인하게 만든 것들

유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남들 따라 아주 다양한 운동 간잽질을 했다.


필라테스, 헬스 그리고 수영.

왜 나와 맞지 않았는지,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다.


필라테스

필라테스를 등록해 본 사람들이라면 대다수 공감할 단점 첫 번째: 비싼 가격 대비 부족한 전문성.


처음 갔던 곳은 6개월 정도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내 기준 꽤 오랜 기간 동안 운동을 한 것이었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는 강사님의 전문성 부족 때문이었다. 허리디스크가 있던 나는 수업 등록을 하기 전에 미리 강사님에게 허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했었다. 강사님은 신경 쓰겠다고 했지만, 운동 중 특정 자세를 취할 때 허리가 너무 숙여져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아파서 그 자세가 안 나온다고 했지만 강사님은 괜찮다며 정상이라고 했다. 그 강사님의 기조로 말할 것 같으면 무조건 쭉쭉 늘리는 게 좋은 거였고, 아파야 효과가 있는 거라 했다. 

결국은 허리 통증 발생 엔딩. 다행히 디스크가 터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운동을 하루하고 나면 욱신거리는 허리 통증 때문에 회복하는 데에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필라테스가 잘못한 게 아니라 아무래도 강사님의 실력이 문제라는 생각으로 설렁설렁하다가 등록 회수를 다 채우자마자 그만뒀다. 그리고 아직은 필라테스를 더 배워보고 싶었던 나는 그 필라테스샵 보다 우리 집과 1분 정도 더 가깝다는 이유로 옆 집 필라테스샵에 다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나 운동에 대충이었다.


두 번째 필라테스샵은 더 가관이었다. 

필라테스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공감할 단점 두 번째: 불친절함과 무책임함.

처음에는 내 몸을 위해 이 정도 비용 투자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가격이 비싼 운동에 속하지만 1:1 레슨이든 4:1 단체 레슨이든 상관없이 고액의 수강료를 먼저 결제해놔야 아까워서라도 꾸준히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이 아까워서 돈을 낸 만큼 끝까지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필라테스가 주로 여성 고객을 타겟으로 하다 보니, 지나치게 인스타스러운 불친절하고 거만한 바이브가 자꾸 나를 이 운동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 필라테스샵의 경우, 단체 레슨이 종종 그렇듯 정해진 날짜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날짜 자율 선택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즉, 운동을 하려는 날짜 일주일 전에 미리 시간표가 열리면 티켓팅을 하여 선착순으로 수업을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 다시 맞이한 수강신청이었다. 그런데 열리는 시간표 대비 운동을 하려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주 2회를 들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예약을 잡지 못해 한 주간 운동을 하지 못하고 날려버린 날도 있었다. 이 필라테스샵이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거냐, 아니었다. 그저 학생 대비 수업 날짜가 부족할 뿐이었다. 요즘 SNS 유행 맛집이 '맛집'이기 위해 내부 테이블을 최소화하고 밖에 대기를 수십 명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겉으로 보면 맛집인데 사실은 그저 테이블이 적을 뿐이다. 필라테스로 돌아와서, 너무나도 부족한 수업 선택지, 제때 열리지 않는 예약 시스템 등이 너무 불합리한 것 같아 얘기를 해보았지만, ‘고객님이 예약을 하지 못한 건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하는 식의 안이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록해 놓은 회차를 다 채우자마자 역시나 그만뒀다.


이쯤 되니 살짝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멀쩡히 맘에 드는 운동 찾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운동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그러다가 운동에 대한 시각을 바꿔준 ‘근력학교'를 만났다.




근력학교(헬스)

근력학교는 헬스장 이름이다. 친구 추천으로 이곳을 알게 되었고, 검색을 하다가 홀린 듯이 등록을 했다. 이전까지는 살면서 헬스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러닝머신도 다룰 줄 몰랐기에 다짜고짜 아무 헬스장에 들어가서 운동을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등록한 지점은 여성전용 헬스장이었다. 헬스장의 위치도 모교와 가까워서 익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수강료도 필라테스 대비 매우 합리적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수강료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때 느꼈다.)


이곳에서 나는 편하게 헬스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무려 1년(wow!)이 넘는 기간 동안 주 2회 꾸준히 다녔다. 가장 좋았던 점은 여성 전용이기에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로 응원하고 독려해 주는 분위기라 작은 성공에도 크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신체 구조 및 근력 운동 방식을 배우게 되었고, 근력운동의 기본 이론과 앞으로 꾸준히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근력운동 동작을 배울 수 있었다. 

벤치프레스, 스쿼트, 데드리프트 수치를 분기별로 기록하는 ‘3대 측정'이라는 것도 처음, 프로틴 공구도 처음, 모든 게 처음이었던 곳에서 나는 천천히 그러나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여지는 목적의 운동이 아니라 실제로 체력 증진이 되는 운동에 크게 만족하면서 이제 여기만 조진다는 다소 극단적인 각오를 다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회사의 단축근무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헬스장이 집과도 멀고 회사와도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9-6 정상 근무 시간에 맞춰서 이동하려니 저녁도 거른 후 제일 붐비는 대중교통을 억지로 타고 가야 마지막 수업에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이것마저 겨울이 되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다 핑계로 들릴 거 잘 안다. 알지만... 그렇지만 정말 힘들었다...). 작년 겨울 한파를 버티지 못한 나는 결국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는 인사를 남기고 잠시 헬스를 쉬기로 결정했다.(그만둔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아직도 돌아갈 타이밍만 보고 있다).


그리고 홀연듯 수영을 등록해 버렸다.




수영

‘수영을 좀 배워야지~’라는 마음가짐은 직장 1년 차 신입이던 2014년부터 먹었다. 그때부터 배웠으면 지금은 취미로 자유 수영을 하는 고수가 되었을 텐데, 쏟아지는 야근과 불규칙한 워라밸로 인해 직장인 10년 차가 되고서야 겨우 시작하게 되었다. 수영은 등록한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발전처럼 느껴졌다. 입문자에게는 그다지 대단한 장비를 요하지 않는 필라테스와 헬스를 지나, 운동 앞뒤로 번거로운 절차 한가득인 수영을 등록했으니 말이다. 물속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았고, 되든 안 되는 일단은 물속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차기를 죽어라 하다 보면 어느새 레일 끝에 도달하는 것도 너무나 뿌듯했다. 새로운 운동에 몸이 힘드니 회사 업무 따위의 잡생각도 덜 하게 되고, 수영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만큼은 내 몸을 온전히 챙기는 느낌에 스스로 갓생을 살고 있다는 자의식 과잉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수영을 마친 어느 날, 여자 탈의실에 남자가 들어온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후속조치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경찰 연계 상담을 받아보고, 따로 정신과를 찾아갔다. 공황 증상과 불안 증상이 생겨 약 9개월간 약물 치료를 받았다. 무방비 상태로 마주했던 그날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몇 달간 너무 괴로웠다. 이 일로 수영장을 못 가게 된 것은 물론이고 목욕탕, 공중 화장실도 한동안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괜찮아졌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불행이 나에게 닥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내가 드디어 재미있게 올인하고 싶은 운동을 찾았다고 기뻐한 바로 그 순간에?

이어서, 자책감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왜 내가 되지도 않는 수영을 하겠답시고 이 낯선 동네까지 와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이 피곤한 날 억지로 온 거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걸...' 충격적인 사건을 겪다 보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는 죄책감과 자책감이라는 감정이 끊임없이 나를 향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계속 이러다가는 내 자신이 나를 더 못 살게 구는 것이 사건 자체보다도 더 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괴로움을 얼른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명상도, 덕질도, 독서도 다 소용없었다. 본능과 같이 떠오른 생각은 ‘아, 운동하면서 다 잊어야겠다.’였다. 정신적인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육체적인 힘듦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영이 아닌 다른 운동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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