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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 영화인 Oct 11. 2023

그래서 유포(YOU.FO)가 뭔데?

이론으로 풀어드립니다.

첫 연수에서는 실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유포(YOU.FO)의 역사와 운동 정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유포라는 스포츠가 생소한 종목이다 보니, 지금도 검색창에서 '유포'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문서 유포', '개인정보 유포', '불법 유포' 등과 같은 결과값만 나온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충분한 이론을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이 글에서는 연수 때 들었던 이론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다.




이론: 유포란 무엇인가

유포(YOU.FO)는 네덜란드에서 약 13년 전에 창시된 뉴스포츠로, 창시자가 아직 살아있는(!) 스포츠다.

뉴스포츠는 기존의 전통 스포츠보다 쉽고 간단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지나친 경쟁에서 탈피해 누구나 즐기면서 체력 증진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승부에 대한 압박도 덜한 편이다. 유포도 그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도구를 가지고 하는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한다.


유포 경기 인원은 3대 3에서 최대 5대 5까지이며, 경기는 한 세트에 15분이다.

인원에 따라 사용하는 경기장의 크기가 다른데, 3대3 경기를 기준으로 농구장 크기의 경기장을 사용한다.

도구는 표지 사진에서와 같이, 손에 드는 스틱과 득점을 하는데에 사용되는 링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장비는 그게 끝이다.


유포의 룰은 간단하다. 쉽게 말하자면 미식축구와 비슷하다. 스틱을 이용해 링을 던지고, 받고, 빼앗으면서 자신의 득점존 안에서 링을 잡게 되면 1득점이다.


잠깐! 여기서 유포의 어원을 알아볼까요? 링의 생김새,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모양을 보면 얼핏 떠오르는 물체가 있을 것이다. 바로 미확인비행물체(UFO)다. 그리고 실제로 이 UFO라는 단어를 따와서 만든 이름이 유포(YOU.FO)다. (진짜임. 창시자한테 직접 들었음.)


유포 장비와 게임 형식을 얼핏 보면 라크로스와도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바로 바디 체크가 없다는 것이다. 바디 체크란, 수비가 상대방을 막기 위해 몸으로 혹은 스틱으로 상대방과 부딪쳐서 공격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 유포는 비접촉 스포츠이다. 경기 중 몸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링을 잡고 있는 선수의 안전거리 안으로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즉,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이기기 위한 승부보다는 내 몸을 지키며 놀이에 가까운 건강한 경쟁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연수에서 여기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난 내가 왜 그동안 단체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경쟁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다. 경쟁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긴장 상태가 되면 잘하던 것도 못하게 되는 극악의 개복치 멘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실책이 곧 너의 생존'이 되는 류의 운동을 견디지 못했다. 피구와 같은 공놀이조차 이기기 위해 공을 피해 뛰어다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지쳐버리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치열함은 학창 시절에 다양한 방식으로 충분히 겪어 더 이상 내성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포는 비접촉 스포츠란다. 경기를 하되 서로의 안전거리를 알아서 확보하고, 다치지 않는 선에서 룰대로만 해도 득점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비로소 나는 느꼈다. 이 스포츠는 내가 기다리고 원해 왔던 운명의 스포츠란 걸! 팀워크는 있지만 경쟁은 없고, 운동은 되지만 격하지 않은 이런 궁극의 스포츠가 존재하다니...! 내가 올해 마스터해야 할 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포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로 금사빠스러운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다.




실전

간단한 이론 설명 후에 실전에 들어갔다.

첫 연습은 스틱을 잡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링을 집어 올리는 동작이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인에게 편한 것을 선택해서 적용하면 된다. 기본 동작이자 가장 쉬운 동작이었기 때문에 몇 분 간의 연습 후에 바로 링을 던져보는 단계로 넘어갔다.


링을 던지는 동작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1번, 스틱에 링을 건다. 2번, 스틱을 몸 뒤로 돌린다. 3번, 스틱을 다시 앞으로 넘긴다 끝. (3번 동작을 할 때 링은 반동으로 스틱에서 벗어나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방에게 날아간다).

이 동작을 2명씩 마주 보고 해 보았다. 링을 던져 서로 주고받는 연습을 랠리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링을 각자 던질 줄도 받을 줄도 알아야 랠리가 가능한데, 던지는 것도 안되고 받는 것도 안되니 이건 그냥 개인 연습이나 마찬가지였다. 링을 잘 던지기 위해서는 링을 던지려는 방향을 향해 몸을 고정하고 스틱의 끝이 목표지점 앞에서 멈추도록 가볍게 던져야 했다(대충 골프처럼 스윙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론적으로는 쉽게 느껴지지만, 막상 던지려고 하니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겠는 안 좋은 습관들이 나와 버리는 게 문제였다. 유포 링은 유포 창시자가 유포라는 종목을 개발할 때 과학공학자, 올림픽위원회 위원, 체육교사들을 모아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만들었다. 공기역학적인 원리에 의해 날아가는 것이기에(문과라 잘 모른다), 무조건 큰 힘을 준다고 멀리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연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포를 처음으로 배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구, 골프, 배드민턴 등으로 다져진 습관이 있어서 의지와는 달리 자꾸 몸을 뒤로 꺾고 팔에 긴장도를 잔뜩 준 채로 스틱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럴수록 링은 정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고 힘을 받아 옆으로 꺾여서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거나, 아니면 스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헛돌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랠리 연습을 하는 내내 체육관에서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가 남발되었다. 내가 못해서 상대방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링을 제대로 던져보겠다는 목적은 산으로 가고 어느새 빨리 이 링을 상대방에게 던져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서로에게 미안함을 넘어 송구스러워질 때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랠리에서는 ‘NO죄송'이라는 규칙이 붙었다. 실수가 워낙 많은 첫 연수이다 보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죄송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이 상황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잘못 던지더라도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말에 힘이 있는 건지, 미안하단 말을 할 시간에 재빨리 뛰어가서 링을 집어오고 다시 던지는 시도를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던지기도 잘 던져야 하지만, 받는데도 요령이 필요했다. 스틱을 뻗어서 링을 받아보려 하는데, 반동으로 인해 자꾸 링이 튕겨나갔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는데, 야구에서 야구공을 받는 원리랑 같은 원리로 링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링이 오는 방향을 향해 스틱을 들이미는 게 아니라, 링이 오는 방향에 맞춰 스틱을 살짝 뒤쪽으로 빼면서 링이 잡힐 때 반동을 줄여주면 링이 다시 튕겨나가지 않고 안전하게 스틱에 착지했다. 평소에 공놀이를 자주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참 신기한 원리였다.


처음으로 배우는 유포였는데도 불구하고 실패의 연속 끝에 모두가 어찌어찌 링을 던지고 받는 것까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2시간 만에 대단한 발전이었다. 이제 연수의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5분간의 약식 유포 경기를 해볼 차례였다.




경기

5분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었다. 이런 걸 과연 경기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민망할 정도로 모두가 뚝딱거리고 파닥거리면서 경기를 뛰었다. '우리가 어디로 골을 넣어야 하더라?'와 같은 순진한 질문은 둘째 치고, 둘이서 랠리를 겨우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여러 명이 서있는 넓은 공간에서 링을 던지려니 도대체 누구한테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아무런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한국 사람 특, 성격 급함. 링을 잡고 있는 선수는 시간제한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타이밍에 링을 던져도 되는 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도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링을 잡는 순간 이 링이 시한폭탄이라도 되는 듯 서둘러 다른 누군가에게 이걸 전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겨버렸다. 이렇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우리 팀 사람인지, 심지어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일단 링이 내 스틱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냅다 허공에 링을 패대기쳐버리는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됐다.


유포 링을 잡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링을 던져야 하는 룰이 있기 때문에 같은 팀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링을 받기 편한 위치를 찾아다녀야 했다. 상대팀도 링을 잡기 위해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빈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로 넓은 경기장을 가로질러 다녔다.  


“2분 지났습니다.”

네? 10분은 된 것 같은데 고작 2분이라구요? 안 그래도 생전 처음 뛰어보는 경기에 심장이 놀라서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살면서 운동으로 땀을 내 본 적이 없어서 얼굴에서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시뻘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왜 상대적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숨 넘어가기 전에 다른 사람과 급히 교체를 했다. 5분 경기를 풀로 뛰기란 현재 체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간이 남아서 경기를 한 세트 더 할 예정이었는데, 참가할 사람은 손 들란 말에 사람들이 힘들어서 눈치만 봤다. 완전히 방전된 나는 가뿐하게 패스했고 겨우겨우 인원수를 채워서 두 번째 세트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2시간의 유포 연수는 끝이 났다.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 써서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번 연수를 진행한 담당 강사님이 앞으로 계속해서 유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신청자에 한해서 동호회에 초대가 된다고 안내했다.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다. 오늘 나의 실력을 보니 앞으로도 더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포 동호회에 참가하게 된다면 친구들과 시간을 내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못하는데 재미있다니. 잘하는데 재미없는 것보단 나은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동호회 가입 신청을 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유포를 꾸준히 배워보겠다는 멋들어진 새해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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