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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하는 영화인 Oct 09. 2023

야 너두 국대 할 수 있어

우리 나이에 못하는 건 키즈모델뿐이니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글은 유포(YOU.FO)라는 비인기, 비주류 뉴스포츠 종목을 중심으로 작성될 예정이다.

전문체육인 혹은 유년시절부터 예체능 교육을 탄탄하게 받아온 사람의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작고 귀여운 이야기이겠으나, 나는 내가 얼마나 멋있는 체육인이 되었는지를 자랑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운동의 ‘운’자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취지의 글이 되겠다.




우선, 이 글의 제목만 보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내가 유포를 처음 접하게 된 이후 월드컵에 참가하기까지의 타임라인을 아래에 적어본다.


2023년 1월: 첫 유포 연수 참가

2023년 2월~3월: 유포 동호회 활동

2023년 4월: 유포 국가대표 선발

2023년 5월: 팀코리아 연습 기간

2023년 6월: 유포 월드컵 참가


이렇게 쉽게 국가대표를 할 수 있냐구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심플한 타임라인을 보면 알겠지만, 유포라는 운동을 접한 지 무려 3개월 만에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유포가 마이너한 운동인 만큼 초창기 국가대표 선발 허들이 낮았다는 점이 한몫했을 것이다(거저 얻은 결과는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기대로 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적어놨듯이, 모든 건 우연한 기회로 시작되기 마련이니까. 




때는 2023년 1월, 누구나 그렇듯이 올해는 진짜, 진지하게, 정말로 운동 하나는 무조건 마스터하겠다는, 매년 실패하기를 반복하지만 또 매년 지치지도 않고 다시 솟구치는 그 열정적인 새해 각오를 품고 있을 때였다.


“새로 들여온 운동이 있어서 무료연수 할 건데 신청해 볼 사람?”


뉴스포츠를 국내에 들여와 홍보하는 일을 하는 친구의 이 제안은 시작이 소소했으나 나의 운동 인생을 바꿔놓는 데에 거대한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이제 막 국내에 개봉하여 세대를 막론하고 농구 붐이 슬슬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제대로 된 운동 하나 꾸준히 해본 적이 없던 나는 평소 팀스포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본 이후 땀 흘리며 전우애를 다지는 청춘 영화에 한껏 고무되어 친구들과 다짜고짜 참가 신청서를 냈다.


여기서 잠깐, 나의 체력 상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나는 직장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었다. 현대인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자목과 허리 디스크는 기본이요, 유연성을 잃어버린 라운드 숄더와 스트레칭하겠답시고 살짝 옆으로 돌렸다 하면 그 순간 바로 목에 담이 오는 몹쓸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유포를 배우는 초반에 몸풀기만으로 담이 걸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몸무게는 저체중이라 근육을 늘리되 체지방만은 평균치를 웃돌아서 지방은 또 빼라고 하는 참으로 심오하고 복잡한 비율의 소유자였다. 그 와중에 저혈압&저혈당 콤보로 당이 떨어진 느낌이 들 때마다 사탕과 과일쥬스를 챙겨 먹으라는 의사의 말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삶의 척도를 잃어버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근력도 없고 지구력도 없고 꾸준히 해 온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이 다였다.

그런 내가 팀스포츠 운동이라니 벌써부터 두려웠지만, 그때의 무모한 결정을 새해 매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신청한 첫 유포 연수는 서울의 한 대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이루어졌다. 10여 년 만에 방문하는 대학교라는 곳은 여전히 파릇파릇하고 에너지가 넘쳐났다. 대학생 시절에도 남의 대학교에는 몇 번 안 가봤는데, 이렇게 실내체육관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참 신기했다. 방학 기간이라 학생이 없어 더욱더 넓고 고요해 보이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왠지 모르게 사회에 찌든 나의 몸과 정신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끼면서, 정작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학교 체육관을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20대의 나는 대학 밖에서의 활동에 전념하느라(영화, 아이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덕질을 하느라) 대학교 안에서의 시간은 참 허투루 보냈었다.


연수를 신청하면서 처음 알게 됐지만, 서울시에서는 예약을 받고 체육관을 대여해 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아마 다른 지자체에서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공립학교 시설 이용의 경우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제도를 통해 공간 대여를 할 수 있었고, 사립학교 혹은 기타 사설 체육관의 경우 공간 대여 플랫폼을 통해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의 장점이라면 신청만 하면 누구나 원하는 체육관에서 쾌적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단점이라면 수십, 수백 개의 팀이 피나는 티켓팅을 통해 예약을 따내야 하는 구조라 박 터진다는 점이었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오프라인 세계는 이제 아이돌 콘서트 산업 외에도 많은 것이 피켓팅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유포코리아에서는 이번 연수를 위해 빛보다 빠른 티켓팅 실력으로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 실내체육관을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쯤 벌써 까마득하겠지만, 이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가 필수였던 때였으며, 대학교에 외부인으로 입장하는 것이었기에 참가하는 모든 인원이 QR코드로 인적사항을 제출하는 절차도 필수였다. 그 번거로운 과정을 극복하고 약 10명의 사람들이 인생 첫 유포를 배우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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