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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sito쏠레씨또 Jul 31. 2022

Fake it till you make it(1)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

내가 최고 애정 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irs)에서 갑작스럽게 파리 발령을 앞두고 있는 에밀리를 향해 남자 친구가 "너 불어 못하잖아" 하며 걱정스레 물어보는데, 이에 에밀리는


"Fake it till you make it (될 때까지 그런 척하다 보면 되겠지)."

라고 호기롭게 대답한다.

출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1, 1화


나의 지난 직장 생활을 함축한 표현이었다. 될 때까지 하면 되겠지.


정형외과 병동에서 근무했을 무렵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주요 장기를 다루는 병동이 아닌 곳에 배정받은 나는 외과 특성상 루틴 업무(수술 전후 간호, 드레싱, 투약)를 쳐내면서 때때로 일어나는 이벤트(타과 환자 케어, 잡다한 막내 업무, 환자 컴플레인 등)를 다뤄야 했다. 그것만 해도 이미 과부하 상태였지만 어느 날 문득

"길가다가 응급환자를 봤을 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arrest(심정지) 상황이 내 눈앞에 놓이면 나는 얼어버릴 것 같은데?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내과병동에서 야간에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하필 숙련된 간호사는 단 한 명뿐이어서 곤혹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전체 인계 시간에 나왔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당시 근무기간 동한 단 한 번도 응급환자를 마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외취업에도 조금씩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던 나는 특수 파트 경력 있는 간호사를 더 우대해준다는 정보를 듣고 중환자실로 로테이션 신청을 했다.


수선생님과의 면담을 할 때는 중환자실 전문간호사가 되어서 커리어를 좀 키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에 수긍해주셨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나의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면담 내용은 병동내 간호사들 사이에서 일파만파 퍼졌고, "여기를 떠나고 싶은 애."로 낙인찍혔다. 막상 바로 보내줄 것도 아니면서 소문은 소문대로 퍼져서 막내 포지션이라 힘들었던 직장생활이 더 고통스러웠다. 업무적인 실수가 생겼을 때는 일로서 지적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 무슨 중환자실 갈 거냐." 식의 싸늘한 조롱이 함께 더해졌다.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애가 경력관리 운운하면서 전배를 요청하는 것이 너무도 당돌해 보였을 거고, 비록 그들의 불합리함을 수선생님께 언급한 적은 없어도 자신들과 함께 하는 게 싫은가 싶어 서운한 마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 또한 미성숙한 사람이라 분노가 더 앞섰고, 보란 듯이 이겨내 보리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내 미래를 위해서 선택한 길이니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용기도 없는 당신들이 내게 쏟아내는 성숙치 못한 태도는 질투로 온전히 받아들이겠다. 내가 이러한 준비를 하는 동안 당신들과의 격차는 10년 후에 더 벌어지겠지. 마음껏 미워해봐."


라고, 내가 결정한 결과에 참고 견디는 것을 선택했다. 약속했던 전배 날짜를 훌쩍 넘기고 1년이 지난 후 10월에 외과계 중환자실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그것도 어느 날 대학 동기이자, 입사동기인 친구가 수술방에서 PA로 로테이션 신청을 해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기감을 느껴 다시 수선생님과 오랜만에 면담을 잡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수선생님의 따님이 나의 대학교 후배였던 터라 시험족보를 챙겨서 요청했다. 시기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족보의 도움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면담 이후 일주일 만에 원하던 과로 배치를 받았다.


그 무렵은 입사한 지 1년이 지나서 선배들이 이제 나를 사람 취급을 해주기도 시작했고, 그들의 싸늘함도 누그러져서 때때로

"이제 병원이 리노베이션을 할 텐데 그러면 여기서도 중증 케이스를 볼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때?"

라며 회유를 하기도 했었다. 내 밑의 후배들도 들어와서 실제로 이제부터 좀 편해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것만을 위해서 이렇게 참고 왔는데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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