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면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것 같은데 출근만 하면 이렇게 많은 중증환자들이 치료를 받고있을까?"였다.
20대 중반, 가장 활기찬 시기에 내 앞에 놓인 환경은 응급과 죽음이었다. 때때로 기적을 보여주는 환자분들 덕분에 보람도 있었지만 거의 매일 임종 간호를 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은 언제나 지쳐있고 예민해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에 막내였다. 그렇게 치이다가 퇴근 후 병원 밖에서 당연히 배려받는 친절에도 황송하다느낄 만큼 나는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 계속 노출되어있었다.
활기찬 사람들과의 소통이 간절하여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도 아니고,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내 실력이 팍팍 늘 거라는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단지 시간을 쪼개서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열정적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또한 사교육 키즈로 커온 나는 학원강사님들의 에너지를 좋아한다. 본질에 한참이나 벗어났고 어쩌면 고리타분해 보일지는 몰라도 25살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집 근처에 한국인 강사가 수업하는 성인 영어회화학원이 있었다. 학부 때 간간히 다녔던 곳이기도 했고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시간대가 아침반부터 저녁반까지 다양해서 원장님의 배려를 받아 근무에 맞춰 다녔다. 그러다 보니 상근직 수강생들보다 풍성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전 여섯 시에는 주로 대기업 과장님들이 출근 전에 수업을 들었는데 아빠뻘 되시는 분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셔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후에는 고등학생, 일반 직장인, 심지어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에 와서 수업을 들었다.
한 반에 최대 수강인원이 10명 정도, 1시간 동안 뭐 얼마나 영어로 말해보고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영어로 말하기 위해서 검색하여 표현을 외워가고, 수강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른 직업군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새삼 구체적으로 들어보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만이 힘든 것임을 아니라며 확인받는 위로의 장소이기도 했다. 때때로 병원에 외국인 환자가 오면 학원에서 배웠던 몇 토막을 실제로 써보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을 붙들고 더 세련된 표현을 알려달라며 받아 적어 가기도 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재미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간호사가 아닌 다른 자아를 성장시키는 곳이었다.
영어회화학원을 발판으로 영어를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국제선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도 없는 내가 이 피로한 현실을 이겨내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 꿈이 너무도 소중했지만 과연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주변에 해외취업을 성공한 동기나 선배도 없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영어공부방법이 맞는지, 외국에 나가서 써먹었을 때 원어민들은 어떤 반응을 할지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막막했던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영어 구사는 언젠가 내 인생도 자유롭게 해 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바람이 돌고 돌아서 지금은 영어로 의사소통하면서 임상 밖의 간호사 일을 하고 있다. (기회를 만들어 평범한 사람의 영어 극복기와 해외취업기를 연재하겠다.)
언젠가 한 번은 병원 선배가 주말에 놀러 갔던 일을 다른 간호사에게 자랑하면서 가만히 있는 내게 툭 말을 던졌다.
"쏠레씨또야, 오프 때 놀러 다니고 돈도 쓰면서 좀 즐겨. 너무 병원만 다니는 거 아니니?"
그 사람이 나를 걱정해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있는 사실만 간결하게 전했다.
"선생님, 저는 교대 근무하면서도 매일 요가 스튜디오 다니고 영어학원 다니면서 제 나름대로 인생을 준비하고 있고 그게 제가 즐기는 방법이에요."
그 선배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원하는 방향을 향해서 꾸준히 갈고닦는 사람이 간직한 묵직함 힘을 그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