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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sito쏠레씨또 Nov 06. 2022

무의식이 행하는 퇴사 전 행동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내기

유달리 잘 기르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가 있다. 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서도 아니고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건 아니지만 길가다가 계획도 없이 길가다가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종종 잘라냈다 (오히려 이별 이후에는 머리카락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직을 여러 번 하는 동안 그 시점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스트레스가 차오를 즈음에 머리를 자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짧게 잘라내고 얼마 뒤에 퇴사를 결심하여 실행한다는 점이었다. 


이 당시에는 특히나 머리를 길러보질 못했다.


나의 지난 10년이 채 안 되는 직장 경력에 대한 빅데이터를 돌려본 결과, 염색은 두피가 약해서 차마 하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펌으로 변화를 주기에는 머리를 망으로 말아 올리기 때문에 티가 잘 나지 않아서 그나마 머리카락을 자르고 억압하는 머리망에서 벗어남으로써 폭발하는 감정을 조용하지만 티 나게 들춰냈다. (지금은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머리망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2019년 4월까지 한국에서 병원 다니는 동안 머리망은 출근 필수템이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진 헤어스타일에 

"웬일로 머리를 싹둑 잘랐어?"

라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그냥 자르고 싶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당시에 그냥 하고 싶었으니까 했었다. 그게 끌렸으니까. 


심지어 올해 초 미군부대를 그만둘 무렵에는 흑인 미군들이 한국에서 이용하는 전용 미용실에 예약해 박스 브레이즈 머리를 하고 출근해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결국 모질 차이로 인해서 두피관리가 힘들어 1주일 정도 유지하다가 미용실에 가서 촘촘하게 땋아진 헤어피스를 풀고 숏단발로 바꿨다. 다인종으로 구성된 직장환경이라 갑작스러운 나의 헤어스타일로 지적하는 사람들 없이 오히려 아시아인이 박스 브레이즈 머리를 실제로는 한 모습은 처음 본다며 모두들 신기해했다. 심지어 지나가다가 나를 따라와 부러 예쁘다며 칭찬해주는 미군들도 있었다.  

레게머리로 알려져 있지만 대단히 인종차별적인 표현이며 머리카락을 사각형 모양으로 가르마를 타서 헤어피스와 땋아 내린머리라는 명칭인 박스 브레이즈(Box braids)가 옳다.


내가 그렇게 단발병에 걸렸던 이유, 그 시점, 그 이후의 일을 연결시켜보니 불편한 감정을 그때그때 차분하게 말로 전달하는 점이 부족함에 있었다. 그래서 결국 삼 세 번을 세다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여 후회를 남기기도 하고, 특히나 밥벌이가 달려있는 직장에서는 꾹꾹 눌러놨다가 쉬는 날 머리카락에 분풀이를 해댔다. 결정적인 점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둘다 의미 있는 방법이 아니다. 놀랍게도 나의 이런 면을 꽤 최근에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것을 알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괴로워하며 힘들어했으며 죄 없는 머리카락은 잘리고 볶여 나갔을 터. 잠못이루며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른 채 고통스러웠을 날을 생각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의 직장에서 5개월째 잘 적응하고 다니고 있다. 정말 불만 없이 그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내 머리카락도 어느새 어깨 밑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 직장은 직장이다. 생각지도 못하는 이유로 인해서 갑자기 머리를 댕강 잘라버리고 싶은 순간이 나도 모르게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 한번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자. 내가 꾹꾹 누르면서 말 못 하고 있는 고민이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닌지, 이를 어떻게 교양 있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세련된 지성인이 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할 것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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