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괌에서 만난 의사들과 심리상담가

나에게 맞는 이민 기준 찾기

by Solesito쏠레씨또

괌 출장 동행을 제안한 선생님을 따라, 미군과 계약된 비뇨기과 전문의와 배우자, 한국계 미국인 치과의사, 심리상담가를 만났다. 공식적인 미팅이었지만, 식사 자리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투몬비치 근처가 괌에서는 제일 번화가에 속한다. 그러나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한적했다. 바다는 맑고 예뻤지만, 주변 인프라는 몰이나 명품숍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낡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괌에서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이었다. 차모로인(괌 원주민)들은 어디서든 밝은 미소로 “Håfa Adai! (하파데이)” 인사를 건넸다. 모두가 상냥했고, 여유를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하며 응대했다. 심지어 공항 직원들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라면 인종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착 다음 날, 해 뜨기 전 5km 러닝을 했다. 바다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당시 나는 러닝을 열심히 하던 시기였고, 맑은 자연, 친절한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러닝까지 가능한 이곳에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기후가 문제였다. 무덥고 습한 날씨는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고급 호텔에 묵었지만, 수영장도 바다도 갈 힘이 나지 않았다. 투어나 미팅 외엔 에어컨 밑에 누워 있는 게 전부였다. 괌에서의 삶을 온전히 즐기려면 일정한 활동성을 갖고 야외로 나가는 것이 필요할 텐데, 이 기후 속에서 일상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 문화적 자극이나 교류가 부족해 보였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짙은 괌에서 혼자 적응해 내가는 삶이 가능할지도 막연했다.


괌 출장 동행을 제안한 선생님을 따라, 미군과 계약된 비뇨기과 전문의와 그의 배우자, 한국계 미국인 치과의사, 심리상담가를 만났다. 미팅이었지만, 식사 자리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가, 제대 후 괌에서 클리닉에서 일하면서 커리어와 여유를 동시에 이어가고 있었다. 사이판에서 만난 심리상담가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업무적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나는 지금 같은 회사의 다른 파트에서 일하고 있고, 미국 이민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뉴욕만 생각했는데, 괌도 고려 대상이 되어 이번 기회에 직접 보고, 이곳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했다. 30대에 가지 않으면 40대에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과, 현재 직장에 대한 만족감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비뇨기과 전문의의 배우자는 뉴욕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괌의 여유로운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서핑도 즐길 수 있고, 가까운 동남아로 여행도 자주 갈 수 있어서 지금이 좋다고 했다. 너무 한적한 건 아니냐는 내 질문에, 그래서 더 좋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내 이민 계획을 따뜻하게 응원해주었다.


치과의사는 한 달에 한 번 한국에 다녀오며 괌에 머물고, 일주일에 한 번은 사이판에 진료를 보러 간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좋은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다시 이민자로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겠냐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괌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GRMC(Guam Regional Medical City) 정도뿐이고, 의료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고도 했다. 괌이냐 뉴욕이냐는 결국 성향의 차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 고려한다면 미국 이민 자체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판에서 만난 심리상담가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였다. 사이판의 유명한 장소를 직접 차로 안내해주었고, 친정에서 재배한 냉동망고까지 챙겨주었다. 미국 본토에서의 삶도 좋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키우며 고향에 정착한 삶이 훨씬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 기준은 훨씬 선명해졌다. 나는 언젠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 그렇다면 미국 이민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뉴욕과 괌, 이 두 극단적인 도시 중에서 나는 괌을 소거했다.

만약 부양가족이 있다면 한국과 괌을 오가며 천천히 적응하는 삶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괌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어 미국 본토로 옮겨야 한다면 또 다른 적응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처럼 체력이 있고, 낯선 환경을 다양성과 흥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에 뉴욕에서 정착한다면, 언젠가 여유가 필요할 때, 내가 만난 사람들처럼 괌에서 보내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URO.jpg 괌에서 만난 비뇨기과 전문의와 배우자
PSY.jpg 사이판에서 만난 심리삼담가




keyword